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
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점점 부풀어 오르게
잠이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는 일
나를 스쳐가는 세월, 흘러가는 물살, 나로 인하여 변할 줄 알았지요. 변하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그러나 진은영 시인 참 쿨하네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그냥 자신을 지나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네요. 모르던 일이 흘러와 아는 일도 흘러가면 그뿐이라고, 그 물빛에 잠시 따스해지는 상상 하다가, 그것조차 잊어버리는 일, 참 아름다운 마음이네요. <최정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