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수구초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껑더리된 늙은 여우가
짓무른 눈으로 가시밭길을 더듬어
난 곳을 찾아가는 것은
향수 그 이상의 마음입니다.
어미의 털이, 형제의 털이 아직 남아있는 굴,
시르죽은 여우가 거기서 몸을 말고 누워
죽는 것은, 깨어나지 않는 것은
그곳이 태아의 잠으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라서
천지간에 살아보기로 한
태아의 기억으로 가서
이제 살아보았으니까
비록 모두의 답은 아니고 ‘나’만의 이야기겠지만
그 대답을 하러 가기 위해
여우는 발이 부르트게 걸었을 것입니다.숨을 잃은 털 위로
희미한 빛과 바람의 화학이 내려앉고
그래도 잊지 못하는 마음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야 하는
일생의 사건사고를 향해
삼원색 프리즘의 날개를 펼 때
문득 바라본 저녁 하늘의 붉은빛과
쉼도 없이 흐르는 검푸른 강,
초록빛 꿈을 꾸고 있는 숲.
정념과 회한과 꿈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거기 보태어져 더 아름다워지는
필생(畢生)의 마지막이 있음을
여우의 마음은 알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이 있음을.
여우가 죽을 때 제 굴, 제 근원을 향해 고개 돌리고 죽는다는 수구초심, 발이 부르트게 걷는 이유, 우는 이유, 시 쓰는 이유, 모두가 다 수구초심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이 세상의 정념과 회한은 모두 혈육의 털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그 굴속을 그리워하는 가련한 마음과 같지요. <최정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