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백련꽃 사설 - 윤금초(1941~ )

시인 최주식 2014. 2. 20. 21:27

백련꽃 사설 - 윤금초(1941~ )

 

얕은 바람에도 연잎은 코끼리 귀 펄럭이제.

연화차 자셔 보셨소? 요걸 보믄 참 기가 맥혀. 너른 접시에 연꽃이 쫙 펴 있제. 마실 땐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는 거여. 초파일 절에 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 하나 시켜놓고 열 명도 마시고 그래. 그 향이 엄청나니께. 본디 홍련허구는 거시기가 달라도 워느니 달러. 백련 잎은 묵어도 홍련 잎은 못 묵거든. 연근은 둘 다 묵지마는 맛이 영판 틀려. 떫고 단면이 눌눌한 것이 홍련이제. 백련 뿌리는 사각사각하고 단면도 하얘.

백련은,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제.

강신재의 『우리 마을 이야기-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룡 백련마을』 패러디

 윤금초 선생님. 이 사설시조 처음 읽어본 날 저 연화차 마시러 갔어예. 그 향이 엄청나다고 해서 저도 동창들 우르르 몰고 가서 달랑 하나 시켰어예. 진짜로 커다란 접시 같은 데 한가득 펴지데예. 차례로 벌어지는 꽃잎을 보고 “엄마야, 엄마야!” 막 소리 질렀어예. 그리고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어가며 오래오래 마셨어예. 마음 좋은 찻집 주인이 오래오래 많이 마시면 흰머리도 검게 된다카면서 자리를 비껴주데예. 달짝지근하면서도 은은한 그 차를 마시면서 제가 잘 가는 정약용 생가 근처 연지에서 본 백련 봉오리 이야기를 했어예. 쭉 뻗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하얀 봉오리가 정약용 선생의 힘 있는 붓끝 같았다고예. 파란 하늘이 유배지로 보내준 아내의 치마폭 같아 거기 두 마리의 새와 향기로운 매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고 말했어예. 그 백련이 이 백련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했어예. 모두 다 웃었어예. 웃음소리에서 백련 향기가 났어예. ‘초파일 절에 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는 참 대단한 비유네예. 나이롱이긴 하지만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 아름다운 불교 의례는 해보지 못했거든예. 그래도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는 것은 정말 실감났어예. 백련차 마시고나니 진창에 빠져 있었던 제가 학이 되어 날아갈 것 같았거든예. <강현덕·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