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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다리

시인 최주식 2006. 3. 4. 22:47
22.다리
사바세계서 피안으로 인도하는 ‘통로’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사진설명: 다리 아래의 구품연지와 대웅전 마당의 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33계단(도리천)과 함께 불국의 상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계곡이나 하천을 건너기 위해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널찍한 돌을 발판으로 해서 건너간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이로부터 발생한 다리가 오늘날 우리가 보듯이 실용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한 다리로 발전해 왔고, 현대인들은 그런 성격을 가진 다리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다 같은 다리지만 사찰 경역(境域)의 다리는 성격이 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찰의 다리는 기능성이나 실용성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가 그런 성격을 가진 다리로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

요즘은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철책으로 막아 놓고 있어 다리 위로 다닐 수 없지만, 원래는 자하문(紫霞門)을 통해 대웅전을 오르거나 안양문(安養門)을 거쳐 극락전으로 들어 갈 때 반드시 이 다리를 거쳤다.


33계단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환상의 불국토 지상에 재현

누각 형식의 태안사 능파각 '도교의 신선사상'과도 연결



<불국사 연화교의 연화문 >
사진설명: 연화문은 극락세계의 구품연지에서 화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불국사 대웅전 축대 아래에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있었다. 구품연지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동서로 둘러싸고 있던 긴 타원형 연못이다.

언제 조성되었는지 그 시기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창건과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불국사 창건당시부터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으로 불렀던 사실과, 종을 달아 두는 범종각(지금은 법고가 있음) 을 범영루(泛影樓)라고 한 것 등이 당시 구품연지에 비쳤을 그림자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청운교의 청운은 원래 학덕이 높아 성현의 경지에 오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백운교의 백운은 곧 백운향(白雲鄕)이라는 뜻으로, 천재(天宰)가 사는 곳이다. 그래서 청운교.백운교는 선계(仙界) 즉, 부처님이 계시는 영산회상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선계의 다리요 환상의 다리인 셈이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계단 수를 합하면 33계단이 되는데, 33의 수는 불교의 도리천(利天)을 말한다. ‘도리’라는 것은 ‘tryastria’를 음사(音寫)한 것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한다.

33이란 수는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이미 〈베다(Veda)〉에 천(天).공(空).지(地)의 3계에 33신(神)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이 불교에 수용되어 하나의 우주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후세 대승불교의 정토(淨土)신앙은 이 도리천 사상이 발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 등 불국사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개의 중요한 구조물들은 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정토신앙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자하문 주변과 대웅전 일대에 구현된 상징체계를 다시 짚어보면, 석가탑과 다보탑은 석가여래가 상주설법하고 다보여래가 상주증명하는 영축산에서의 법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자하문은 영산법회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가는 환상의 자주빛 안개 문을 상징한다. 그리고 측대 아래에 있는 구품연지는 이곳이 바로 불국의 연화화생하는 극락정토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33의 수가 적용된 청운교와 백운교는 이 일대가 도리천임을 나타내고 있다.

사찰을 불국세계로 조성하려는 종교적 열정과 극락왕생의 연원을 담고 있는 사찰의 다리는 불국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크고 작은 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청운교와 백운교 등과 달리 실재로 물이 흐르고 있는 계류(溪流) 상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찰 다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 승주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여수 흥국사 홍교(虹橋), 송광사 삼청교(三淸橋) 등이 그런 예에 속하는 다리인데, 이들 다리는 홍예 구조로 되어 있고, 홍예 천장에 용두를 장식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승주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
사진설명: 승선교는 이 부근이 선계(仙界)의 입구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선계와 속계를 구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암사 승선교를 살펴보자. 선암사계류동승선교비(仙巖寺溪流洞昇仙橋碑)에 의하면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1713년) 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는 계류를 따라 강선루(降仙樓)로 통하는 길이 생겼기 때문에 반드시 승선교를 건널 필요가 없어졌으나원래는 승선교를 건너야 강선루에 오를 수 있었고, 또한 사찰 경내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승선교는 선계의 상징이자 선계와 속계를 이어주는 통로이면서 두 세계를 구별하는 역할을 하는 다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수 흥국사 홍교도 계류 위에 놓여 있는 다리로서 형태는 무지개모양으로 되어 있다. 홍예의 정점 부근에는 용의 얼굴을 새긴 마룻돌이 양쪽으로 튀어 나와 있고, 천장 중앙에 머리가 아래쪽으로 드리우고 있는 용두가 장식되어 있다. 조선 인조 때에 세워진 다리로, 규모와 주변과의 조화 면에서 가장 뛰어난 석조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흥국사 홍교는 사바세계로 상징되는 계류 이쪽, 즉 차안과, 불국정토로 상징되는 계류 저쪽, 즉 피안을 이어주는 역할과 함께 두 세계를 구별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송광사 삼청교는 능허교(凌虛橋)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다리는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구실을 한다. 장대석으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후,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 했다. 흥국사, 선암사 다리와 마찬가지로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장식되어 있다. 삼청교 위에 지어 놓은 우화각(羽化閣)은 사람의 통행을 돕기 위해 만든 회랑식 목조 건물로서 신선으로 화(化)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곡성 태안사 능파각>
사진설명: 다리의 기능과 함께 문과 누각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건물이다. 누각형식으로 지은 것은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로 생각된다.
삼청교와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다리가 곡성 태안사 입구 계곡의 능파각이다. ‘능파’는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말하는 것으로, 신선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삼청교가 불전 마당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데 반해 능파각은 불전 경역과 거리가 꽤 먼 곳의 자연 계류상에 위치해 있다. 다리 위에서 주변 경치를 둘러보면 마치 정자에 올라 무릉도원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능파각은 다리이면서 누각 건물 형식을 취한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이 절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한 결과로 보인다. 이 다리를 통과함으로써 사찰 경역에 진입한 의미를 갖는 다른 사찰 다리의 경우와 같다.

사찰의 다리에 도피안교, 극락교, 연화교, 열반교, 삼청교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피안교라는 것은 이 다리를 건넘으로써 생사번뇌로 가득 찬 속세를 떠나 열반(涅槃)의 언덕에 도달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극락교는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고, 연화교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삼청교의 삼청은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삼청을 가리키는 말이며, 능파는 성현이나 신선의 걸음이 우아하고 가벼움을 형용한 말이다. 또한 능허란 하늘, 또는 하늘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화(羽化)는 우인(羽人), 즉 신선이 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피안.극락.열반.연화 등은 불교와 직접 관련된 이름이고, 삼청.승선.능파.능허.청운.백운 등은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찰의 다리 이름은 불교적인 것과 도교적인 것이 혼재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도교에서는 그들의 이상세계를 선계(仙界)라 하고, 불교에서는 불국정토, 또는 극락세계라 하는 등 그 이름을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양자가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어떤 면에서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도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대일(大一)의 인식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 길에는 하나에 대한 다른 하나의 위라든가, 둘 사이의 상대적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도교의 교의는 완벽한 균형에 의한 이원론 자체의 소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불교의 불이(不二)의 개념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도교적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사찰의 다리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는 배경의 하나로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사찰 초입과 경내에 놓여 있는 다리는 기능적인 효용성보다는 불교의 이상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바세계와 피안정토를 경계 짓는 기능과 함께 두 이질적 영역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상징적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136호/ 6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