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부르시면/권지숙 그가 부르시면/권지숙 골목에서 아이들 옹기종기 땅따먹기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한 아이 흙 묻은 손 털며 일어난다 애써 따놓은 많은 땅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의 푸른 손.. 詩가 있는 아침 2018.04.12
콩나물의 물음표 - 김승희(1952~ ) 콩나물의 물음표 - 김승희(1952~ )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 밑 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 詩가 있는 아침 2014.03.11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내 안에 신을 모시는 줄 알았더니 내 안에 계신 신을 깨우는 줄 알았더니 천만(千萬)의 그대를 향해 나를 바쳐 가는 거. 나를 죽여 받은 또 하나의 몸이라면 돌 섶에 핀 야생초엔들 오체투지 못하리 아득한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넘어서 간 그림자여. 어릴 적 친.. 詩가 있는 아침 2014.03.11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오태환(1960~ )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오태환(1960~ ) 삐뚜로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白金)의 물소리와 청금(靑金)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떼가,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창까지 옻칠경대 빼닫이서랍까지 죄다 열어젖혀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 詩가 있는 아침 2014.03.01
지심동백- 박명숙(1956~ ) 지심동백- 박명숙(1956~ ) 혈서 쓰듯, 날마다 그립다고만 못하겠네 목을 놓듯, 사랑한다고 나뒹굴지도 못하겠네 마음뿐 겨울과 봄 사이 애오라지 마음뿐 다만, 두고 온 아침 햇살 탱탱하여 키 작은 섬, 먹먹하던 꽃 비린내를 못 잊겠네 건너 온 밤과 낮 사이 마음만 탱탱하여 지난 늦가을 떠.. 詩가 있는 아침 2014.03.01
촉- 나태주(1945~ ) 촉- 나태주(1945~ ) 무심히 지나치는 골목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 각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촉을 본다 얼랄라 저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한 개의 촉 끝에 지구를 들어올리는 힘이 숨어 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것들이 풀리는가, 온몸이 으슬으슬하다. 또 봄 병을 앓는 것인가,.. 詩가 있는 아침 2014.03.01
행복 찾기-전석홍(1934~ ) 행복 찾기-전석홍(1934~ ) 미처 몰랐었네 그것이 행복인 줄을 하루치 땀방울 흠뻑 쏟아내고 둥지 들어 도란도란 어둠을 사를 때 지금 발 디딘 여기 이 자리 하찮은 일상에서 흐뭇함을 느낄 때 이 순간이 행복인 것을 뜬구름 잡으려 헤매는 무리들 오늘도 빈 하늘만 찾아 떠도네 가진 것 크든.. 詩가 있는 아침 2014.03.01
밥- 이우걸(1946~ ) 밥- 이우걸(1946~ ) 내 하루의 징검돌 같은 밥 한 그릇 여기 있다 내 하루의 노둣돌 같은 밥 한 그릇 여기 있다 내 한의 얼레줄 같은 밥 한 그릇 여기 있다. 네가 주인이라서 섬기며 살아왔다 네가 목숨이라서 가꾸며 살아왔다 그 세월 지난 듯도 한데 왜 아직도 배가 고프니? 한 끼니 밥을 위.. 詩가 있는 아침 2014.02.20
답청(踏靑)- 정희성(1945~ ) 답청(踏靑)- 정희성(1945~ ) 풀을 밟아라 들녘에 매 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푸름을 밟는다는 답청은 원래 우리네 봄 민속놀이. 복사꽃 살.. 詩가 있는 아침 2014.02.20
진순 씨!- 신진순(1953~ ) 진순 씨!- 신진순(1953~ ) 고은 티라곤 없는 오십 고갯마루 뒷짐 지고 헉헉대며 오르는 계단 길에서 정 묻혀 이름 불러 준 너희들이 그냥 좋다 권위의 갑옷을 단단히 두르고 온갖 위협의 창날을 휘두르면서 해인사 일주문 사천왕상으로 입 앙다물고 파수를 선다 해도 그 갑옷이 얼마나 허술.. 詩가 있는 아침 201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