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부르시면/권지숙
골목에서 아이들 옹기종기 땅따먹기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한 아이 흙 묻은 손 털며 일어난다
애써 따놓은 많은 땅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의 푸른 손바닥이 골목을 온통 덮을 즈음 아이들은 하나둘
부르는 소리 따라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 맞대고 놀고
부르시면, 어느 날 나도 가야 하리
아쉬워 뒤돌아보리
저물어 어머니가 부르면 아이들의 놀이는 끝난다. 땅은 다시 공터가 된다. ‘그’의 부름이 들리면 어른들도 놀이를 그쳐야 할 것이다. 땄던 것들을, 인연과 상처와 사랑까지를 지상의 골목에 부려놓고. 이 무섭고 신비로운 부름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련과 애착이 클수록 잘 들리는 소리. 귀를 막을수록 사실은 더 잘 들리는 그 소리.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詩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나물의 물음표 - 김승희(1952~ ) (0) | 2014.03.11 |
---|---|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0) | 2014.03.11 |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오태환(1960~ ) (0) | 2014.03.01 |
지심동백- 박명숙(1956~ ) (0) | 2014.03.01 |
촉- 나태주(1945~ ) (0) | 2014.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