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시인 최주식 2014. 3. 11. 22:35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내 안에 신을 모시는 줄 알았더니
내 안에 계신 신을 깨우는 줄 알았더니
천만(千萬)의 그대를 향해 나를 바쳐 가는 거.
나를 죽여 받은 또 하나의 몸이라면
돌 섶에 핀 야생초엔들 오체투지 못하리
아득한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넘어서 간 그림자여.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무속인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평범했던 일상에 신이 찾아온 것입니다. 가끔씩 종교인의 절실한 기도 속으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입신’ 정도가 아니었던 거지요. 그녀는 온몸으로 거부했지만 강력하기로는 레전드 격(?)인 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을 죽여 그 몸을 신에게 내주고 말았지요. 그 후 그녀에게는 춥고 외롭고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왔습니다. 신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사람들의 찬 발을 감싸 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작두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에서 그 사람들의 고통을 다 잘라내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그녀에게 존재하고 군림하러 온 게 아니었습니다. 이 시조 속의 신도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그곳에 낭자한 눈물을 닦아주라 합니다. ‘천만의 그대를 향해’ 자신을 바치라 합니다. ‘돌 섶에 핀 야생초’에도 ‘오체투지’하라 합니다. 성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옵니다. <강현덕·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