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콩나물의 물음표 - 김승희(1952~ )

시인 최주식 2014. 3. 11. 22:36

콩나물의 물음표 - 김승희(1952~ )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기간 동안
밑 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가 일그러지면서
하나씩 금빛으로 터져 나오는 노오란 쇠갈고리 모양의
콩나물 새싹,
그 아름다운 금빛 첫 싹이 왜 물음표를 닮았는지에 대하여
금빛 물음표 같은 목을 갸웃 내밀고
금빛 물음표 같은 손목들을 위로위로 향하여
검은 보자기 천장을 조금 들어올려보는
그 천지개벽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어두운 기간 동안
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네 눈 속에
쑥쑥 한 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
검은 보자기 아래―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옛날, 저희 집에도 검은 보자기를 둘러쓴 콩나물시루 하나가 작은방 아랫목에 있었어요. 어린 저는 그 시루 속이 너무 궁금해 덮어 놓은 보자기를 자꾸 걷어 보았겠지요. 결국 해서는 안 될 광합성으로 콩나물 얼굴은 파랗게 변해갔겠지요. 덮어 놓은 것은 덮어 놓은 그대로 두고 지켜봐야 했는데요. 그래야 물음표를 닮은 금빛 새싹이 보름달처럼 벅차게 부풀어 오를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떤 물건은 까발리지 말고 보자기에 싸서 선반에 얹어놓고 그만한 거리에서 가끔 쳐다보는 것이 그 물건을 위하여 더 낫다’라는 김춘수 선생의 말씀…. 진작 좀 알았더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강현덕·시조시인>

'詩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가 부르시면/권지숙  (0) 2018.04.12
입신(入神) - 백이운(1955~ )  (0) 2014.03.11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오태환(1960~ )  (0) 2014.03.01
지심동백- 박명숙(1956~ )  (0) 2014.03.01
촉- 나태주(1945~ )  (0) 201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