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살기 위하여 / P. 엘뤼아르 이곳에 살기 위하여 / P. 엘뤼아르 1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 동지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낮이 나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을 나는 그 불에게 바쳤다. 울창한 숲과, 작은 숲, 보리밭과 포도밭을, 보금자리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4.05.09
언덕에서 / 나태주 언덕에서 / 나태주 1 저녁때 저녁때 저무는 언덕에 혼자 오르면 절간의 뒤란에 켜지는 한 초롱의 조이등불이 온다. 돌다리 내려 끼울은 석등石燈에 스미는 귀 떨어진 그 물소리, 내게 스민다. 숲의 속살을 탐하다 늦어버린 바람의 늦은 귀가歸嫁가 온다. 2 아침에 비, 머리칼이 젖고 오후 맑..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4.01.21
석쇠의 비유/복효근 석쇠의 비유 / 복효근 꽁치를 굽든 돼지갈비를 굽든 간에 꽁치보다 돼지갈비보다 석쇠가 먼저 달아야 한다 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꽁치인데 석쇠는 억울하지도 않게 먼저 달아오른다 너를 사랑하기에 숯불 위에 내가 아프다 너를 죽도록 미워하기에 너를 안고 뒹구는 나는 벌겋게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4.01.12
새는 날아가고/나희덕 새는 날아가고/나희덕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그래도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 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 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3.01.01
좋고나머지/황정숙 좋고나머지/황정숙 강화도 함허동천 비린내 물씬 나는 윗말 우물가 욕쟁이할매 팔순잔치 돼지 한 마리 잡던 날 동네 어르신들 번갈아 식칼 들고 왕소금에 들기름, 생고기 한 점에 술 한 모금 술독 비어 갈 무렵 담배 몇 보루와 소주 몇 박스, 젊은이가 찾아왔네 저놈은 누구니이까? 저놈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3.01.01
호시절/심보선 호시절/심보선 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 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12.31
축 복 / 용 혜 원 축 복 / 용 혜 원 밤 하늘의 별들이 한 낮의 태양이 나를 위해 빛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길거리 가로수들이 밤거리의 가로등이 나를 위해 준비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지구가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12.27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박주택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박주택 우산 없이 비에 젖고 있는 사람은 옷이 젖은 채 천천히 걸음을 떼는 사람은 비가 두렵지 않다 노래에 물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별에 절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는 사람은 늦은 매미 울음과 잎사귀가 물드는 것이 섞이는 동안 어느 먼 곳쯤에서 돌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12.26
고래 발자국/임영석 고래 발자국 / 임영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고래들의 발자국을 보고 싶다 고래가 발을 버리고 왜 지느러미를 갖게 되었는지 무슨 아픔이 있어 바다로 몸을 숨겼는지 발자국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만 같다 새끼를 낳고 젖을 물리는 고래들의 발자국을 고고학자들은 왜 아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12.26
나무 안에 누가 있다/양해기 나무 안에 누가 있다/양해기 나무가 흔들린다 나무 안에 누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나무가 흔들릴 수는 없다 누가 내곁을 떠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나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