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 나태주
1
저녁때 저녁때
저무는 언덕에 혼자 오르면
절간의 뒤란에 켜지는
한 초롱의 조이등불이 온다.
돌다리 내려 끼울은 석등石燈에 스미는
귀 떨어진 그 물소리,
내게 스민다.
숲의 속살을 탐하다 늦어버린
바람의 늦은 귀가歸嫁가 온다.
2
아침에 비,
머리칼이 젖고
오후 맑음,
언덕에 올라 앞을 막는 바람 한 줄기,
나무숲에서 새소리 난다.
새소리 끝에 묻어나는 숲의 살내음.
아아, 누구든지 한 사람 만나고 싶다.
누구든지 한 사람 만나고 싶다.
3
오늘은 불타는 그대의 눈
그대의 눈썹.
엷은 풀냄새 나다,
여린 감꽃냄새 나다,
그대 머리칼,
까맣게 잊어먹었던
그대 분홍 손톱에 숨겨진
아직도 하얀 낮달이 한 개.
찾아가다 찾아가다
길 잃고 주저앉은 산골 속
햇볕에 불타는 노오란 산수유꽃길
그대의 눈.
이제사 잠든
대숲바람 소리
그대의 눈썹.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곳에 살기 위하여 / P. 엘뤼아르 (0) | 2014.05.09 |
---|---|
석쇠의 비유/복효근 (0) | 2014.01.12 |
새는 날아가고/나희덕 (0) | 2013.01.01 |
좋고나머지/황정숙 (0) | 2013.01.01 |
호시절/심보선 (0) | 201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