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서 / 박재삼 추억에서 / 박재삼 진주(晉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어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엄마 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어두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죽음 / 김동호 아버지의 죽음 / 김동호 사진첩 속 사진이 퇴색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이 있다. 六.二五 전쟁, 一四후퇴때 빙판길 미끄러지며 미끄러지며 찾아간 첫 피난 마을 피난간 빈집, 안방 차지하고 쌀독이며 김치독이며 마구 허는 재미에 전쟁도 잠시 잊은 듯 마냥 흥겹기까지 한 피난민들 그 속에 우리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유작 노트 중에서 / 허수경 아버지의 유작 노트 중에서 / 허수경 ...여행을 한다, 겨울 속으로 눈은 끝없이 내리고, 새는 후두둑..., 인적의 바퀴는 눈에 쓸려가고 우렁우렁... 雪 山이 대답하는 고요... 나는 발견한다... 대숲..., 너무 좋아서, 맨발의 아가처럼 연록의 저 천진, 천진은 애리다 ...며칠을 서성인다, 들어가보지 못하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등 / 정철훈 아버지의 등 /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산양 / 이건청 산양 / 이건청 아버지의 등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거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들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4
꽃 / 김춘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