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 김동호
사진첩 속 사진이 퇴색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이 있다.
六.二五 전쟁, 一四후퇴때
빙판길 미끄러지며 미끄러지며
찾아간 첫 피난 마을
피난간 빈집, 안방 차지하고
쌀독이며 김치독이며 마구 허는 재미에
전쟁도 잠시 잊은 듯 마냥 흥겹기까지 한 피난민들
그 속에 우리도 끼여서 하룻밤을 잤지
그러나 누가 알었으랴
이튿날 아침 ,우리 소 우리 소가 없어진 것을,
우리 여섯 식구의 전재산을 실은 우리 소
놀란 아버지 찾아나섰지만
소는 이미 어떤 집 마당
큰 가마솥에서 끓고 있고
소의 머리통, 버젖이 전승물처럼 걸어놓고
무법천지 음미하고 있는 그들
“이 소 ,우리 소요”
채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대 여섯 장정 우루루 몰려나와
“무슨 개수작이냐”며
소주인도 소처럼 요절낼 듯한
아-그 험한 얼굴들
나는 그 때 보았다.
아버지의 하얗게 질린 얼굴
하얗다 못해 파아래진 안색
그 안색은 그 후에 회복이 되지 않았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 하시고
자조 자조 깨시던 아버지
의사들은 주사바늘 꽂으며
“신장염입니다. 만성 신장염입니다.”
꽤나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 후 십년 동안 곯다가 곯다가 가신
우리 아버지의 정말 병명을
그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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