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계 / 조동범 폐계 / 조동범 닭은 머리를 내밀고 차갑게 갈라지는 바람을 바라보고 있다 트럭에 실려 떠나는, 마지막 길을 따라 닭의 시선이 서늘하게 놓인다 수탉의 냄새 한번 맡아보지 못한, 텅 빈 자궁을 안고 떠나는 길 철망을 움켜잡은 닭의 발은 마지막 남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한없이 휘어져 있다 가벼워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5
정육점 / 조동범 정육점 / 조동범 죽음을 널어 식욕을 만드는 홍등의 냉장고 냉장고는 차고 부드러운, 선홍빛 죽음으로 가득하다 어둡고 좁은 우리에 갇혀 비육될 때까지 짐작이나 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식욕을 떠올렸을, 단 한번도 초원을 담아보지 못한 가축의 눈망울은 눈석임물처럼 고요한 죽음을 담고 있었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5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투명한 냉동고의 서늘함 속에 꽃잎처럼 피어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는 천천히 꽃잎을 지우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은 무료하게 손톱을 만진다.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에선 빠른 템포의 음악만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판매원은 자신의 손을 뺨으로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5
둘둘치킨 / 조동범 둘둘치킨 / 조동범 명동 둘둘치킨 앞에서 애인을 기다린다 튀김닭 냄새가 자신의 영역을 그리는 둘둘치킨, 앞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지나간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유리 너머의 닭을 바라본다 오지 않는 애인 튀김옷을 둘둘 말아 입은 닭들의 천국 안에는 몇 개의 만남과 사소한 시비, 닭들의 죽음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5
무등산(無等山) / 이성부 무등산(無等山) / 이성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
이성부 / 무등산 이성부 / 무등산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지. '저 산은 하눌산이여.' '하눌님이 계시는 집이여.' 산에 올라서, 하느님을 만나서, 물어볼 것이 참 많았지만 부탁할 것도 참 많았지만 나는 훨씬 뒤에야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닐 때에야 이 산 꼭대기에 오를 수가 있었지. 입석대 끝에서 날고 싶..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
추운 산(山) / 신대철 추운 산(山) / 신대철 춥다.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잡념과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걷고 밤의 끝에서 또 얼마를 걸어야 될까? 너무 넓은 밤,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
겨울바다 / 김남조 겨울바다 / 김남조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다음 더욱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
꽃 씨 / 서정윤 꽃 씨 / 서정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 하나의 유리이슬이 되어야지. 은해사 솔바람 목에 두르고 내 가슴의 서쪽으로 떨어지는 노을도 들고 그대 앞에 서면 그대는 깊이 숨겨 둔 눈물로 내 눈 속 들꽃의 의미를 찾아내겠지. 사랑은 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
개 화 / 안도현 개 화 / 안도현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넌 하나씩 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온갖 색깔을 고이 펼쳐 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 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