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투명한 냉동고의 서늘함 속에 꽃잎처럼 피어 있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는 천천히 꽃잎을 지우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은 무료하게 손톱을 만진다.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에선 빠른 템포의 음악만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판매원은 자신의 손을 뺨으로 가져간다. 냉동고의 서늘함이 판매원의 뺨 위에서 얼음처럼 부서진다. 냉동고에 손을 넣을 때마다 판매원은 살의를 감지한다. 냉동고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판매원은 생각한다. 마감을 넘긴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밤이 깊어질수록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더 밝고 서늘해져.
사람들은 빠르게 심야로 흘러간다. 판매원의 좁은 미간이 예리한 주름을 만든다. 냉동고의 모서리에서 은빛 조각이 서늘하게 빛난다.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롭게 심야를 맞고 있는 중이다.
평화롭게 심야가 다가오고,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은 평화로운 살의로 가득 찬다. 평화로운 살의를 가로질러 판매원은 냉동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냉동고에서 죽음. 판매원의 마지막 온기는 수증기를 만들어 냉동고의 덮개를 가린다. 판매원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냉동고 밖의 세상을 바라본다. 푸른 낯빛을 하고 서늘하게 누워 있는 판매원은 고요히 보인다.
꺼지지 않는 간판만이 심야를 밝혀주는,
은빛 조각 서늘하게 빛나던 심야 아이스크림 판매점,
위로 하현달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깊고깊은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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