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無等山) / 이성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
태어나면서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
무슨 가슴 큰 역사를 그 안에 담고 있어
저리도 무겁고 깊게 잠겨 있느냐.
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이
이제 이를 것이고,
저 산이 몸을 일으켜 나아갈 날이
이제 또한 가까이 오지 않았느냐.
저 산에는
항상 어디 한구석 비어 있는 곳이 있어,
내 서울을 떠나기만 하면
그곳이 나를 반가이 맞아 줄 것만 같다.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0) | 2010.01.25 |
---|---|
둘둘치킨 / 조동범 (0) | 2010.01.25 |
이성부 / 무등산 (0) | 2010.01.15 |
추운 산(山) / 신대철 (0) | 2010.01.15 |
겨울바다 / 김남조 (0) | 2010.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