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폐계 / 조동범

시인 최주식 2010. 1. 25. 23:48

폐계 / 조동범

 

닭은 머리를 내밀고

차갑게 갈라지는 바람을 바라보고 있다

트럭에 실려 떠나는,

마지막 길을 따라

닭의 시선이 서늘하게 놓인다

수탉의 냄새 한번 맡아보지 못한,

텅 빈 자궁을 안고 떠나는 길

철망을 움켜잡은 닭의 발은

마지막 남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한없이 휘어져 있다

가벼워지기 위해

제 몸을 비웠던 것일까

닭은 텅 빈 자궁을 안고

철망에 매달린 깃털의 떨림을 바라본다

깃털의 결을 따라 서성이던 바람이

닭의 눈에 예리하게 박힌다

닭은 무정란 무수히 쏟아지던 과거를 들춰

텅 빈 자궁 속,

아득한 모성을 더듬는다

백열등 치욕처럼 빛나던,

멀고 먼,

산란의 한때를 더듬는다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陽洞詩篇 2 / 김신용  (0) 2010.01.25
즐거운 식사 / 조동범  (0) 2010.01.25
정육점 / 조동범  (0) 2010.01.25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0) 2010.01.25
둘둘치킨 / 조동범  (0) 2010.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