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즐거운 식사 / 조동범

시인 최주식 2010. 1. 25. 23:49

즐거운 식사 / 조동범

 

그녀는 능숙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창 밖에 시선을 던진 채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을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하게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는 삼 분 동안 그녀는
서류뭉치처럼 단단하게 묶인 일상을 떠올린다
흘러내린 스타킹처럼 구름이 흘러가고
편의점에는 경쾌한 음악이 펼쳐진다
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에 걸터앉아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퉁퉁 불은 면발을 넘기며
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 본다
한 컵의 뜨거움, 수증기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다
컵라면을 먹다 말고 그녀는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소를 바라본다
이제는 말라, 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건조한 평일 오전의 채소
그녀는 우걱우걱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무처럼 단단히 박혀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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