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로 가는가/박주택
우산 없이 비에 젖고 있는 사람은
옷이 젖은 채 천천히 걸음을 떼는 사람은
비가 두렵지 않다
노래에 물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별에 절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는 사람은
늦은 매미 울음과 잎사귀가 물드는 것이 섞이는 동안
어느 먼 곳쯤에서
돌아갈 곳을 살피며 옷깃을 여미고
새로 시작한 연인은 서로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이제 가을이 오고
지팡이를 쥔 노인 우두커니 손가락을 만지작거릴 때
가을 비 내려 입구에 모여 있는 사람은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어깨를 떤다
날짜들이 지나가는 자국들마다
만나 헤어지는 자국들마다 슬픈 무늬들 핀다
—《문장웹진》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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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택 / 1959년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시간의 동공』, 시선집 『감촉』. 현재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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