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답청(踏靑)- 정희성(1945~ )

시인 최주식 2014. 2. 20. 21:41

답청(踏靑)- 정희성(1945~ )

 

풀을 밟아라
들녘에 매 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푸름을 밟는다는 답청은 원래 우리네 봄 민속놀이. 복사꽃 살구꽃 피는 철에 들에 나가 연하고 푸른 풀을 밟고 노닐며 봄기운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놀이가 답청이다. 근데 이 시는 그런 즐거운 봄놀이라기보다 그런 봄을 부르는 우리들의 의지만이 단호하다. 한겨울 얼어서 들뜬 푸른 보리밭을 밟으면 밟을수록 더 많은 봄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보리밟기로 읽히는 시다. 지난 암울했던 연대에 민주화에 앞장섰던 시인이 1974년 펴낸 첫 시집의 표제작이기에 답청에서는 그런 의지가 더 단호하게 느껴진다. 맞을수록 더 푸른 봄이 온다던 그 겨울공화국 지나 지금 우리 시절에 답청을 즐길 만한 봄은 어디쯤 오고나 있긴 하는 건지. 절판된 첫 시집 다시 출간한 시인은 느지막이 자식 새로 얻은 듯 좋아라 하는데.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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