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국화- 고은(1933~ )

시인 최주식 2014. 2. 20. 21:38

 

국화- 고은(1933~ )

 

남쪽의 시인이여
어찌 국화 따위만을 헛되이 노래하느냐
수많은 꽃들에 대하여
그대는 죽음이다
아니
역사에 대하여 그대는 죽음이다
북의 시인이여
어찌 어버이만 굳게 노래하느냐
수많은 형제자매에 대하여
그대는 죽음이다

남과 북의 시인이여 그대들 떠나라
오 죽음으로부터 거짓으로부터

우리 시대 최고, 최다산 시인. 펴낸 수백의 시집 권수 본인도 셀 수 없어 그냥 ‘여럿’이라고만 말하는 시집들 들춰보니 오늘은 이 시 가슴에 꽂히네. 이산가족 죽기 전 한 번의 만남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민족의 자괴감 때문인가. 이 시 제목을 ‘부끄럽다, 남북 시인들이여’로 고쳐 읽었으면 딱 좋겠다. 이런 엄혹한 분단현실에서 꽃의 서정이나 어버이 수령님만 구가하는 남북의 시인들, 어이 거짓 아니라 떳떳이 항변할 수 있고 부끄럽다 아닐 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 거짓이 아니라 진실, 생명들이 진실로 어우러지는 세상 노래하는 것이 시의 본령일진대. 부끄럽지 않게 그런 세상 노래할 날 앞당기는 것도 분단현실에서 엄연한 우리 시의 책무일진대.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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