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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포교사

시인 최주식 2006. 2. 22. 22:52
수행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포교사
포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포교사


1. 포교와 수행은 신행공동체와 함께
신행생활을 하면서 불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불교는 경전이 방대하고 교리 체계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어렵다고들 한다.
2,500년에 걸쳐서 인도, 중국 등 여러나라의 문화와 접촉하며 사상적 중심축으로 발전한 불교는 그 폭이 넓어서 수행을 오래 한 신도라 할지라도 불교 전체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포교사들에게는 불교의 백년대계를 위한 종단의 원력으로 부처님의 향기,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는 신행공동체인 "포교사단" 이 있어 수행과 포교를 겸한 실천적 신행활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따라서 포교사단을 신행공동체가 아닌 신행조직체로 이해한다면 마음의 각도를 조금 달리해 바라보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너와 나 그리고 상하로 구별되는 조직체의 세계와 달리 신행공동체 안에서는 서로가 하나이기에 대립과 갈등, 불신과 미움이 없는 상생의 아름다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기도만이 있을 뿐이므로 포교사단은 신행공동체임이 분명코 합당하다.
오늘도 부처님의 눈빛같은 따뜻한 시선과 순수함으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주며 실천적 포교에 비중을 두고 지역사회 포교와 생활불교 활성화로 포교의 기틀을 다지는 전국 포교사들의 대원력을 존경한다.

2. 나를 변화시키는 수행
진리란 본래부터 있던 것으로 그것을 깨달은 분이 부처님이며, 누구나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수행을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누구든지 부처님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근간으로 지혜를 닦아서 일상적 삶을 열심히 진솔하게 살아가는 과정 하나하나를 수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로 수행을 생각해 본다면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위로는 청정한 믿음과 바른 마음으로 정진하여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것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여 참된 지혜와 자비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교사들이 올바른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전 생애 동안 자비의 삶을 사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근기에 맞는 적절한 수행방법을 택해서 하고, 먼저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수행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수행력은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참선 수행을 하든, 참회의 3000배 절수행을 하든, 간경을 하든, 염불을 하든 마음속 불성을 찾아내는 자기점검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있는 마음을 본래의 청정심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한다.
나를 변화시키는 수행은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기에 포교로 회향되어야 한다.

3. 세상을 변화시키는 포교
포교란 조계종 포교법에서 보듯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지혜와 자비 정신을 사회에 널리 펼치는 것이기에 자비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포교다.
포교사들이 수행을 통해 깨달은 부처님의 길, 지혜의 길, 행복의 길을 부처님과 인연이 되도록 우리 이웃들에게 가르쳐 줌으로서 부처님 품안으로 이끌어 지혜와 자비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포교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감로수같은 바른 법을 전하고, 어리석은 이웃들에게 지혜를 일러주며, 소외된 이웃을 내 가족처럼 섬기는 자비의 실천이 포교다.
따라서 포교의 주체인 포교사들의 올바른 수행만이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포교를 더욱 확대해 나갈 수 있으며 포교는 지혜와 자비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신도늘리기와는 차이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6년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녹야원에서 교진여를 비롯한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셨으며 이것이 불교 최초의 포교활동이자 인재불사다. 따라서 전법을 펴는 포교사들은 부처님 십대 제자로 포악하고 욕을 잘하는 사람들이 사는 수로나 지방으로 포교를 떠나 일년에 500명을 귀의시키는 등 평생 9만 9천명을 교화시킨 부루나 포교사의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적극 본받아야 한다.
또한 신라시대의 재가불자로 포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법흥왕과 그 신하들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불교를 공인하게 한 순교자 이차돈 포교사의 당당한 사명감으로 포교 일선에 나서야 한다.

포교는 인간의 행복이나 불자들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포교사들은 스스로 포교현장을 개발해 생명있는 것들에 대한 평등과 존귀함으로 모든 인연들이 "나" 라는 생각을 갖고 지혜와 자비로서 사명을 다해 찾아가는 포교를 해야한다.
정법을 바르게 전해야 할 포교사들이 포교 대상에 따라 분별심을 가지면 우월감으로 이름이나 알리고 오는 자기만족 포교, 존경이나 받고 오는 업적 포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결국 수행과 포교는 하나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결국 수행과 포교는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굳이 수행과 포교를 비교한다면 수행은 자아완성을 위한 지혜의 자리행이기에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포교는 중생교화를 위한 자비의 이타행이므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점일 것이다.
포교사들은 사회 곳곳에서 자비행을 실천하기에 수행과 포교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생활하는 그 자리가 수행처이고,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불성이 있어 포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조계종단의 포교사 배출 이유가 수행과 포교에 의한 중생교화임에 불구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하여 또는 철저한 준비없이 충분한 내용없이 외형적인 포교로 그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지 못해 일반신도와 다를바 없는 포교사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스스로가 불교의 희망이니만큼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있어야 할것이다.

포교사단 또한 미래에 대한 비전있는 수행과 포교 계획을 세워서 어떤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게 가장 효과적인가를 연구해 포교사들에게 새로운 웰빙시대, 주5일 근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대중적 포교브랜드를 통해 전문화 시켜야만 제대로 된 포교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