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시인이 하는 詩評 (시평 2004년 가을호)

시인 최주식 2010. 1. 24. 22:44

시인이 하는 詩評 (시평 2004년 가을호)
 

 

달팽이 略傳

 

「현대시학 」2004년 5월호

  서정춘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밖으로 빚어 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 가는 온

이 혓바닥뿐인 生이 있었다

                                                                             


                           아름다운 불행

                                                                       마경덕



  마치 달팽이가 흘리고 간 흔적처럼 시 한 편이 한 행이다. 고달픈 삶의 여정처럼 쉼표 하나 없이 이어져 있다.


 달팽이 한 마리를 기억한다. 나선형의 둥근 집, 집이 아닌, 짐이 되곤 하던 그, 가엾은 집 한 채를 기억한다. 배춧단에 딸려온 달팽이 한 마리, 한동안 내 말벗이었던.

 물기가 마르면 금세 유골단지가 되어버리는 달팽이의 집. 나는 분무기로 그의 등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 슬픔이 마르지 않도록 그에게 슬픔을 부어주었다. 어느 날 그의 슬픔은 동이 났고 달팽이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달팽이는 복족류(腹足類)다. 배가 발바닥인 셈이다. 배를 문지르며 바닥을 기다보니 굼뜨고 느리다. 등에는 평생 지고 가야할 짐도 있다. 가히 '혓바닥뿐인 生'이다. 분명 혀가 아닌 '혓바닥'이다. 혀는 손이나 팔처럼 신체의 일부이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러 내밀지 않고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혀다. 대개 몸의 중요한 부위는 은밀한 곳에 숨어있다. 달팽이는 그 혓바닥 같은 몸뚱어리를 내밀어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부드러운 혀로 거친 바닥을 슬몃슬몃 건너가야 한다.

 '슬몃슬몃'속에는 조심조심이란 뜻이 들어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달팽이는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눈을 탐지기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도 달팽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등에 얹힌 껍데기는 이미 한 채의 유골. 혼령의 집엔 골조가 없다. '뼈란 뼈 죄다 녹여'버리고 육체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달팽이가 평생을 들쳐업고 다녔을 그 집이 이젠 동그란 항아리가 되었다. 유골 한 채가 명부전(冥府殿) 앞에 놓여진 것이다.  명부전이란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유명계(幽冥界)다. 지상에선 명토(冥土)라고 하여 지장보살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을 안치한 전각(殿閣)이다. 명부전의 뜨락에 엎드려 달팽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은 넋의 영생을 위해 극락왕생을 비는 것인가.

 시인은 달팽이가 지고 온 무거운 짐을 운명이라 했다. 그 어떤 거부의 몸짓도 없이 고통마저 달게 받아들였다. 시인은 달팽이의 짐을 유골이라 하였고 그 유골을 아름답다고 하였다. 달팽이가 뼈를 녹여 만든 것은 한 채의 유골, 곧 詩이다. 골수를 짜내듯 시를 짓다보니 뼈란 뼈는 다 녹아서 詩라는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이루었을 것이다.

 略傳이란 사적(事績)을 간략히 적어서 뒷세상에 전하는 기록인데 시에 표현된 시점이 죽은 뒤의 기록이다. 몸은 삶, 곧 현실에 아직 놓여 있는데 굳이 약전이라고 붙인 까닭이 무엇인가. 저승 세계는 이미 시인의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와 있다. 詩에게 살과 피를 내주는, 시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 시인은 껍질만 남은 존재를 확인한다. 시로 인한 깊은 상처로 인해 시인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로 인한 불행이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행복인 것이다.

 시인은 자기 세계(뜨락)를 슬몃슬몃 핥으며 살아 왔던 달팽이, '온몸이 혓바닥뿐인' 달팽이를 등장시킨다. 여덟 글자로 달팽이의 전 생애를 요약하고 '뿐'이라는 한정어를 덧붙여 보잘것없는 삶을 강조해 놓았다. 이것은 연체동물인 달팽이의 생애 뿐 아니라 평생을 포복하며 사는 인간의 삶을 함축하는 말로, 달팽이의 생이 돌연 인간의 생으로 변하는 접점이 된다.

 혀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말을 고르는 일. 평생 언어를 고르고 다듬어야 했던 시인은 혓바닥뿐인 삶이었다. 시인의 삶은 말, 즉 로고스(Logos)와 관계가 깊다. 로고스는 고대로부터 철학이나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존재를 가리킨다. 이 시에서는 사상으로서의 존재보다는 시장바닥처럼 질펀한 존재를 말하고 있다. 혀가 아니고 ‘혓바닥’이기 때문이다. 결국 달팽이의 집은 존재의 집이요 영혼의 집이다.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뭉쳐 엮는 것이 서정춘 시의 특징이다. 그래서 시는 짧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인은 등단 28년 만에 첫 시집 『죽편』을 냈다. 시집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달팽이처럼 더딘 걸음인 것이다.

 그러나 느린 것들은 집요하다. 서두르지 않으므로 포기 할 줄도 모른다. 그 느림 속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힘이 숨어있다. 그 힘으로 달팽이는 담을 타고 벽을 넘는다.

 서정춘의 시에는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옹골찬 힘이 숨어있다. 고은 시인은 좋은 시에는 시적 불운이 필요하다며 시인을 일컬어 "뼈 속에 무덤 기운이 가득하다.“ 고 했다. 그렇다. 「달팽이 略傳」에도 무덤 기운이 넘치지 않는가! 실로 시인과 달팽이가 자웅동체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