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조선호박 / 복효근

시인 최주식 2010. 1. 26. 23:15

조선호박 / 복효근

 

잘 익은 조선호박은

자식 둘 기르며 허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몸매

내 작은 형수 엉덩이 같아서

신난간난 한세월 지긋이 뭉개온 토종의 저 둥근 표정이라니

그속엔

천둥 같은 가뭄 같은  것들도 푹 삭아서 약으로 고였겠다

이제는 따글따글 오뉴월 뙤약볕이 한 말은 여물어서

은빛 붕어새끼 같은 눈물 같은 씨앗들이

어둠 속 환하도록 빛나겠다

얼마나 깊은 궁륭일까

잘 익은 조선호박일 수록 큰 허공 하나 키워서

내 형수 엉덩이 두드려 볼 수는 없어도

누렁호박 두드려보면 들린다

뿌리야 거름구덩이 속에 박혔어도

지리산 줄기처럼 섬진강 줄기처럼 넌출넌출

벋어나간 호박덩굴 궁 궁 발울림 소리들

봄 햇살 함께 일어서선

늦서리 함뿍 뒤집어쓰고야 밭언덕을 내려와

죽은 시아비도 늙은 시어미도 바람같은 지아비도

저녁 한 밥상에 둘러앉히고

궁시렁 구시렁 쌀 안치는 소리

상차리는 소리 ‥‥‥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숫돌 / 복효근   (0) 2010.01.26
넥타이를 매면서 / 복효근   (0) 2010.01.26
비누에 대한 비유 / 복효근   (0) 2010.01.26
수의 패션쇼 / 이해리   (0) 2010.01.26
은밀한 매복 / 이해리   (0)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