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박 / 복효근
잘 익은 조선호박은
자식 둘 기르며 허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몸매
내 작은 형수 엉덩이 같아서
신난간난 한세월 지긋이 뭉개온 토종의 저 둥근 표정이라니
그속엔
천둥 같은 가뭄 같은 것들도 푹 삭아서 약으로 고였겠다
이제는 따글따글 오뉴월 뙤약볕이 한 말은 여물어서
은빛 붕어새끼 같은 눈물 같은 씨앗들이
어둠 속 환하도록 빛나겠다
얼마나 깊은 궁륭일까
잘 익은 조선호박일 수록 큰 허공 하나 키워서
내 형수 엉덩이 두드려 볼 수는 없어도
누렁호박 두드려보면 들린다
뿌리야 거름구덩이 속에 박혔어도
지리산 줄기처럼 섬진강 줄기처럼 넌출넌출
벋어나간 호박덩굴 궁 궁 발울림 소리들
봄 햇살 함께 일어서선
늦서리 함뿍 뒤집어쓰고야 밭언덕을 내려와
죽은 시아비도 늙은 시어미도 바람같은 지아비도
저녁 한 밥상에 둘러앉히고
궁시렁 구시렁 쌀 안치는 소리
상차리는 소리 ‥‥‥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숫돌 / 복효근 (0) | 2010.01.26 |
---|---|
넥타이를 매면서 / 복효근 (0) | 2010.01.26 |
비누에 대한 비유 / 복효근 (0) | 2010.01.26 |
수의 패션쇼 / 이해리 (0) | 2010.01.26 |
은밀한 매복 / 이해리 (0) | 2010.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