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나무의 전모 / 복효근

시인 최주식 2010. 1. 27. 23:13

나무의  전모 / 복효근

 

늘 다니던 산길에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

지난해 태풍 루사에 쓰러져있다

그 얽히고설킨 뿌리를 하늘로 쳐든 채

하늘 치솟던 높이도

그 끝모를 깊이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한 때는 가지 가득 꽃을 피워

꽃등을 켜놓은 것처럼 언덕이 화안했었는데

바람이 잎을 되작되작 뒤집으면

햇살이 한 잎 한 잎

그 푸르른 영화를 연주하곤 했었는데

한바탕 광풍에 널브러진 거목이

하, 천연덕스럽게 평화로워

다가가 나무둥치를 발로 차니

썩기 시작한 나무껍질 아래서

와르르 쏟아지는 검고 하얀, 아뿔사!

‥‥‥개미 개미들 ‥‥‥

어느새 제 몸을 저 아닌 것들에게 내주었구나

그랬었구나

늘 위를 향한 턱없는 선망과

깊이에의 끝 모를 열망만이 아니었구나

그 보다는

수평을 향한 저 쓰러짐의,

저 내어줌의 자세까지가 나무였구나

내가 한 그루 나무라는 사실을

잊을 뻔한 즈음

 

 

 

                                                                             복효근 시인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편운문학상」신인상 수상.
   1997년 시와시학「젊은 시인상」수상.
   1993년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1996년『버마재비 사랑』

   2000년『새에 대한 반성문』
   2002년『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2005년『목련꽃 브라자』

   2006년『어느 대나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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