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전모 / 복효근
늘 다니던 산길에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
지난해 태풍 루사에 쓰러져있다
그 얽히고설킨 뿌리를 하늘로 쳐든 채
하늘 치솟던 높이도
그 끝모를 깊이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한 때는 가지 가득 꽃을 피워
꽃등을 켜놓은 것처럼 언덕이 화안했었는데
바람이 잎을 되작되작 뒤집으면
햇살이 한 잎 한 잎
그 푸르른 영화를 연주하곤 했었는데
한바탕 광풍에 널브러진 거목이
하, 천연덕스럽게 평화로워
다가가 나무둥치를 발로 차니
썩기 시작한 나무껍질 아래서
와르르 쏟아지는 검고 하얀, 아뿔사!
‥‥‥개미 개미들 ‥‥‥
어느새 제 몸을 저 아닌 것들에게 내주었구나
그랬었구나
늘 위를 향한 턱없는 선망과
깊이에의 끝 모를 열망만이 아니었구나
그 보다는
수평을 향한 저 쓰러짐의,
저 내어줌의 자세까지가 나무였구나
내가 한 그루 나무라는 사실을
잊을 뻔한 즈음
복효근 시인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편운문학상」신인상 수상.
1997년 시와시학「젊은 시인상」수상.
1993년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1996년『버마재비 사랑』
2000년『새에 대한 반성문』
2002년『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2005년『목련꽃 브라자』
2006년『어느 대나무의 고백』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명창 / 장석주 (0) | 2010.01.27 |
---|---|
문학이 어디 갔을까? / 이경희 (0) | 2010.01.27 |
와리바시라는 이름 / 이규리 (0) | 2010.01.27 |
애콩 / 이은규 (0) | 2010.01.27 |
제7회 노작문학수상작 (0) | 2010.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