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 불을 켜다 / 홍일표
연밭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던 오리가
남루한 흙탕물을 벗어던진다
오리의 몸을 잡고 있던 물들이 줄줄이 매달린다
흰 상여 뒤를 따르는 유족들 같다
물은 금세 제 자리로 돌아가
몸을 잠가버리고,
물을 떼어낸 오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듯
깃털 사이사이에 숨은
물의 기억들을 털어버린다
물 밖으로 나와 생의 젖은 속잎을 말리며
흙탕물뿐인 제 육신의 본적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진흙 속에서 뽑아낸
하얀 전구알 같은 연꽃
누군가 찰칵 불을 켠다
생의 괴저에 뿌리 내린 백련이
물 밖의 오리를 힘껏 잡아당긴다
<시와경계> 200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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