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백련, 불을 켜다 / 홍일표

시인 최주식 2010. 2. 7. 21:06

백련, 불을 켜다 / 홍일표

 

연밭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던 오리가

남루한 흙탕물을 벗어던진다

오리의 몸을 잡고 있던 물들이 줄줄이 매달린다

흰 상여 뒤를 따르는 유족들 같다

 

물은 금세 제 자리로 돌아가

몸을 잠가버리고,

물을 떼어낸 오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듯

깃털 사이사이에 숨은

물의 기억들을 털어버린다

물 밖으로 나와 생의 젖은 속잎을 말리며

흙탕물뿐인 제 육신의 본적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진흙 속에서 뽑아낸

하얀 전구알 같은 연꽃

누군가 찰칵 불을 켠다

생의 괴저에 뿌리 내린 백련이

물 밖의 오리를 힘껏 잡아당긴다

 

<시와경계> 200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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