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의 페이스북.
달포 전부터 그를 엿보고 있다. 예순여섯 노(老) 작가는 소녀처럼 일기를 적는다. 작가는 원로 소설가이거니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적는 일상마저 문학으로 둔갑시키는 중이다.
소설가 박범신이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내려간 게 지난해 11월 말이다. 선생 노릇(명지대 문예창작과)을 매듭짓고, 작가 노릇만 하겠다며 택한 고향행이었다. 1963년에 고향을 떠났으니 무려 반세기 만의 귀향이다.
선생이 정착한 곳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釣亭里). 낚시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집에선 탑정 호수가 보인다. 호수를 내다보며 그는 하루를 기록한다.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논산 일기’다.
“고향을 떠날 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혹은 높이 걸어 나왔는지를 따져보니 잠이 더 안 온다.”(17일 오전 4시 27분) “고향 땅, 돌아와 누웠으니, 헛된 꿈이라도 한바탕 꾸었던 것인가.”(11일 오전 12시 48분) “밤은 고요하고 할 일은 없고, 다시 소주다. 관계에 따른 연민은 인간의 오랜 고질병이다.”(5일 밤 11시 53분)
그러니까 선생은 고향을 연민하는 중이다. 그리움이 깊으면 그 그리움이 해소된 뒤에도 연민의 마음은 남는다. 우리도 얼핏 알겠다. 명절 날 고향에서 품었던 늙은 어미의 품. 문득 쪼그라든 그 품이 몹시도 서러웠던 날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범신은 연민의 문학가다. 연민의 병이 깊어서 그는 지난 39년간 39편의 장편소설을 쏟아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누를 수 없을 때, 그에게서 소설이 자랐다. 어미 품을 닮은 고향에서 그는 치열하게 연민하는 중이다. 이 연민은 소중하다. 소설이 곧 쏟아질 조짐이니까.
일기를 보니 선생은 요즘 『논산의 어제 이야기』란 책을 읽는 모양이다. “고향 얘기 쓸 게 많다”고 적었으니 고향이 테마인 소설이 해산될 지도 모른다. 객지를 떠도는 우리는 그 이야기에 마음을 기대고 싶다. 그가 연민의 병을 지독하게 앓기를. 그래야 박범신의 고향 소설이 익어간다. 올 설에도 전국은 귀성객으로 몸살을 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