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러스 스티븐스(1879~1955)/정새벽·최정례 번역
저녁의 첫빛에 불을 밝혀요,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별 이유도 없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상한 세계는 궁극적인 선(善)이라고.
그러니까 이것은 가장 강렬한 랑데부.
바로 이 생각 속에서 우리는 모든 무관심에서 벗어나
어떤 것 하나로 우리 자신을 끌어모으지요.
단 하나의 그것으로, 단 하나의 숄로
탄탄하게 감싸인 우리들, 우리는 가난하기에, 따뜻함 하나가,
불빛 하나가, 힘 하나가 기적적인 권능이지요.
여기서, 지금, 우리는 서로를 잊고, 우리들 자신을 잊지요.
우리는 어떤 질서의, 어떤 전체의, 어떤 지식의
모호함을 느끼지요, 그것들은 우리의 랑데부를
생명의 품 안에서, 마음 안에서 주선하였던 것인데.
우리는 말하지요, 신과 상상력이 하나라고…
가장 높은 촛불은 얼마나 높이 어둠을 비추는지.
이와 똑같은 빛으로, 그 중심이 되는 마음으로,
우리는 저녁의 대기 속에 하나의 방을 마련해요,
그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곳을.
어스름 저녁에 처음으로 불을 켜듯이 상상력을 펼쳐요. 상상력은 내 속의 애인, 상상력과 내 안의 방에서 만나 상상력이 나를 숄처럼 감싸주면 가난한 나는 그 불빛으로, 그 따뜻함으로 기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상상의 촛불이 어둠을 멀리 밀어내도록 공중에 상상과 함께 거처할 방 한 칸 마련하세요. <최정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