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시인 최주식 2012. 8. 12. 21:58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1.

시는 설명하듯이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 한 중학생이 쓴 시를 읽고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 보자.

 

모자

합천중 2년(남)

 

어느날 같은 통로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그 아주머니는 한 종이백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주시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졸업 축하한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라."

그것은 흰 모자였다.

나는 그날 이웃 간의 정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2008. 4. 30.)

 

먼저 이 시가 가진 내용을 보면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졸업선물을 줘서 인정을 느꼈다는 것인데 나름대로 감동을 느낀 사건이다. 그렇다면 시가 될 수 있는 첫 대문을 통과한 것이라고 본다. 요즘은 바로 앞에 사는 이웃하고도 인사하고 지내는 경우가 드문데 졸업 선물을 챙겨줬다. 그것이 뜻밖에 사건이고 그래서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설명하는 투여서 시다운 느낌이 안 난다. 이렇게 바꿔 보는 것이 어떨까?

 

1. 첫 줄에 '어느날'은 뺀다. 이것을 빼도 어느 날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2. 두 번째 줄에서 '아주머니'와 '오셨다'가 되풀이 되고 있다. 종이백은 종이가방으로 바꾼다.

 

3. 세 번째 줄은 통째로 빼는 것이 어떨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4. 마지막 줄에서 '이웃 간의 정다움'이라고 하는 표현이 정확한가? 이웃 간의 정, 이웃 간의 인정이라고 바꾸자. 또는 이 문장을 빼고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글쓴이에게 물어보고 상의하면 더 나은 문장이 나올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전체를 다시 써 보면 다음과 같다.

 

모자

- 합천중 2년(남)

 

같은 통로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오셨다.

종이 가방을 주신다.

"졸업 축하한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라."

흰색 모자였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마지막 줄은 내가 글쓴이 마음을 짐작해서 쓴 것이다.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 쓴 마지막 줄은 너무 흔한 이야기라는 느낌이다. 그 아이에게 물어 봤더라면 더 나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시를 쓸 때는 어떤 감동스러운 장면, 마음을 울리는 일을 잡는 것이 중요하고 그 장면을 천천히 생각해서 기억을 떠 올려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효과 있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느낀 그 감동을 어떻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찾아내야 한다.

글 쓴 학생하고 겨우 한 번 대화를 나누고 고쳐썼는데 두 세번 더 이야기 하다보면 더 나은 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때 일을 더 또렷히 기억할 수 있고 생각지 못한 내용이나 표현을 찾을 수 있다. 

 

------------------------------

2. 대상 시-새벽 번개

 

 

잠들어 있는 것들 위로

불기둥이 떨어져 내린다

가즐고, 굴게

길고 혹은 짧은

기둥들이 여기저기서 부서져 내렸다

불 속에 선

은행나무가 어두운 노랑빛을 띠고 있다

땅에 떨어져 내 발에

밟히는 은행잎이 말했다

털어 버려라 털어 버려라

죽은 세포는

나는 누렇게 바래고

벌레먹은 내 생각의 잎사귀

한 잎도 떨쳐내지 못한다

신새벽 떨어지는

불기둥 속에 서서

가늘고 잘게 쪼개져

잎 버리고 또 버리며

쑥쑥 자라나는 한 그루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이 시는 새벽 번개와 은행나무의 연결을 통해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했으나 그 연결성이 부족해 보인다.  이 시의 1행에서 5행까지는 새벽 번개에 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불기둥'이라는 시어가 '은행나무'와 직접적인 연결성을 갖지 못하고 단순히 번개를 설명할 뿐이다.

 

표현과 설명은 모두 서술이지만, 서술이 그 내용을 변화시킬 때 표현이되고 그 내용을 되풀이할 때는 설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앞부분을 은행나무를 통해 새벽 번개가 치는 상황을 전달하도록 해야만이 비유에 의한 감동이나 상징이 나타나게 된다. (수정 된 시의 새벽 번개와 은행나무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고 볼 것)

 

 그리고 앞 강의 에서도 언급했듯이 화자는 가능한한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처음 부분은 은행나무가 화자였다가 끝 부분에서는 시인이 슬쩍 개입하고야 말았다. 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작자가 직접 화자가 되는 것보다 작자가 다른 화자를 선택하여 그 화자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하게 하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

 

 이 시의 시제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앞 강의에서도 얘기된 부분이지만 작자의 특별한 의도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시제는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이 시는 현재 - 과거 - 현재로 혼돈을 주고 있다.(보라색 글씨 참조)

 

이러한 지적을 바탕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다.

 

새벽 번개(수정 시)

 

 

길고 짧게, 혹은 가늘고 굵게

불기둥들이

은행나무 머리 위로 부서진다

불 속에 잠든 은행나무가

어두운 노란빛으로 깨어난다

털어버리자, 털어버리자

누렇게 바래고

벌레먹은 생각들,

은행나무 잎들이 땅에 떨어져내린다

신새벽 떨어지는 불기둥 속에 서서

가늘고 잘게 쪼개지는

잎을 버리고 또 버리며

은행나무는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

3.대상 시-풍경화

 

내 방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그림이 창문 너머로 끝없이 이어져 보인다

하얀 알루미늄 창밖에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를 지나

동네 가운데로 난 골목길 옆으로 이웃집 낮은 지붕을 따라가보면

저만큼 북한산이 우뚝 서 있고 북한산 너머 너머로

파란 하늘이 파랗게 이어져 있다

세상은 이처럼 끝없이 가는 걸까

문득, 어린아이처럼 세상이 신기로워

작은 발 아래 누운 그림자가 신기로워

물 속에서 물빛으로 이어지는 생각이 출렁인다

안에 갇힌 눈동자는

언제나 밖의 풍경을 그리는 것일까

창밖으로 펼쳐진 그림을 들여다 보는

창문 이쪽에서 사는 커다란 내 눈에

그림 저편 하늘이 들어와 흔들린다

내가 아는 빛깔 몇 개

내가 외울 수 있는 나무 이름 수십 개

스쳐지나간 얼굴까지 포함한 만남 수백개 너머로

지금도 끝없이 이어져가는 풍경들

창 밖에 뜬 하늘이 나를 부르듯

빨강은 파랑을 보고 제 빛을 깨닫고

기쁨으로 뛰어가는 햇살 그리며 슬픔의 빗방울 땅 위로 흘러간다

내 눈 속에 비치 세상은 이렇듯 끝없이 이어지고

그리움 속에 사는 나는

그 무엇을 그리며 가는 것일까

 

위 시는 이미지의 통일이 부족하고 너무 설명적이 것이 흠이다.

1행에서 6행까지의 설명은 군더더기이다. 시를 쓰게 된 배경까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꼭 필요하다면 두드러지지 않게 한 단어나 한 행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

 

위 시의 소재를 살펴보면 창문-다리-그림자-물-눈동자-하늘-빛깔-나무-얼굴-햇살-빗방울 등인데 이 많은 소재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꿰어지지 않는 초점이 없는 글이다. 마지막에 그리움이란 시어가 등장하는데 이것으로 이 시 전체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절제되지 않은 느낌이나 생각을 쏟아지는 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 강의에서 지적 했던 부분인데 시어의 연결 또한 부족하다.

9행과 10행의 다리와 그림자 다음에 11행에서 갑자기 물이 등장한다. 다리와 그림자와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방안 어디에 물이 있으며 그것이 작자의 다리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21~23행 역시 앞 뒤 문맥이 서로 상통하지 않는다. 하늘과 빨강과 파랑색, 햇살과 빗방울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기쁨으로 뛰어가는 햇살은 화창한 날씨의 이미지인데 빗방울이 함께 내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고치면 다음과 같다.

 

수정 시-풍경화

 

창문을 열면

끝없는 그림이 하늘까지 이어져 있다

안에 갇힌 눈동자는

언제나 밖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두 발을 가지런히 모우고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내다본다

내가 아는 빛깔 몇 개

내가 외울 수 있는 나무의 이름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이렇듯 끝없이 이어지고

산 너머 푸른 하늘에는

스쳐 지나간 얼굴이 나를 부르고 있다.

 

-------------------------------------- 

4.대상 시-단순판단

 

새벽까지 켜진 불빛은

자기 욕망의 밝힘만은 아니다

길을 밝히거나

장애 표시로 켜 있거나

맡은 일 하나씩은 비추고 있다

 

항공기 장애들이 깜박이는 옥상

새벽은 언제나 안개로 열리는데

 

안개는 분명 산 밑에서 와서

작은 골목 큰 골목을 쉽게 넘치지

지붕을 남기고 불빛을 남기고

나중엔 그도저도 다아 삼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십사층 옥상엔

뛰어내려도 포근할 듯 발 밑은 안개

 

안개에 휩싸인 가등 행렬

세사에 파묻힌 시인의 행렬

 

위 시는 시적 논리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상력은 훌륭하지만 횡설 수설하는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얘기죠. 씌어진 내용이 읽는 이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거나 혹은 아름답고 멋진 문장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횡설 수설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와 산문은 다르지 않습니다. 시라 해서 뜻이 통하지 않는 구문까지 허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를 처음 쓰는 사람들은 시에서 마음대로 상황을 바꾸거나 낱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합니다.본인은 다 알아볼 수 있지만 남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적 논리를 갖추어야 하겠죠.

 

위 시는 제목이 관념적이어서 어려운데다 연과 연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빛이 비치다가 안개가 끼어들다가 혼돈스럽죠. 이럴 경우에는 이야기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1연의 4행은 모호한 표현이죠.  '장애 표시로 켜 있거나'를 '장애 표시로 켜진 신호등이거나'로  고치면 좀 더 분명해 지겠죠. 그리고 마지막 4연은 비약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안개가 휩싸인 가등 행렬'과 '세사에 파묻힌 시인의 행렬'은 연관성이 부족합니다. 이 둘을 연결할 매개어가 있어야 하겠죠. 연결! 연결! 이것이 바로 시적 논리죠.

 

제목을 그대로 두고 - 관념적인 제목일 경우 시의 내용은 좀 더 구체적이 되어 제목이 의도하려는 바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하며 반대로 시의 내용이 관념적일 때는 제목을 구체적으로 붙여 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 1연의 3,4행과 3연의 6행 그리고 4연을 모두 삭제하고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정 시-단순판단

 

새벽까지 켜진 불빛은

누군가를 밝혀준다

제몫의 빛을 비춘다

 

항공기 장애등이 깜빡이는 옥상

새벽 안개가 풀린다

 

안개는 산 밑에서 와서

작은 골목 큰 골목을 쉽게 넘쳐온다

지붕만 남기고 불빛만 남기고

나중엔 그도저도 다아 삼키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24층 옥상에 서서

안개와

안개 속으로 사라진 작은 불빛을 생각한다

 

☆ 다음 시가 수정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5. 대상시-침묵

 

거실바닥에 몇 장의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사각의 작은 연못

스물 일곱 마리의 크고 작은 고기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헤엄치고 있다

한 마리가 물을 당기며 수평선을 긋다가

수직으로 가라앉으며 물을 늦춘다

다른 한 마리는 여유자작 공간을 넓히다가

또 좁히고 고기들이 물 속 깊이 흘러 들 때

마다 고기들 진행이 달라질 때 마다

연못은 수직과 수평 구도 피라밋과 대각선 구도

대칭과 L자형 구도 물 속 풍경은 수없이 수없이

바뀐다 고기들 세상이 달라진다 물이 연못이

흔들린다

고여 있는 물이 흐르는 것은

고기들의 지느러미로 물을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빠르게 빠르고도 헛되게 썩지 못한다

소리내어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것은 말없이

잠겨있는 몇개의 돌덩이 뿐

 

말이 없다

 

   시의 매력은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시는 연못과 물고기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길다.

   그리고 연못이 등장했다가 물고기에 대한 묘사가 계속된 다음, 다시 연못이 나와 시의 흐름을 깨뜨리고 있다.즉, 시의 흐름이 질서 정연하게 순서대로 다음의 상황을 연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11행부터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했지만 앞에서 연못에 대한 장황한 묘사 때문에 그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이외에 16행 '빠르게 빠르고도 헛되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며, 시의 행(9행,13행)을 기분에따라(마음대로) 갈라 시의 호흡을 끊고 있다.

 이상을 참고하여 고치면 다음과 같다.

 

 

침묵-(수정된 시)

 

거실바닥에 몇 장의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사각의 작은 연못

물고기들이 물 속 깊이 흘러들 때마다

물고기들 진행이 달라진 때마다

연못은 피라밋과 대각선 구도

대칭과 L자형 구도

물고기들 세상이 달라진다

물이 연못이 흔들린다

스물 일곱 마리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

물을 당기며 수평선을 긋다가

수직으로 가라앉으며 물을 늦춘다

고여 있는 물이 흐르는 것은

지느러미가 물을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헛되이 썩지 않는다

소리내어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것은 말없이

잠겨 있는 몇 개의 돌덩이뿐

 

말이없다.

 

6.대상 작품-봄은 비를 타고서

 

 

오고있다

봄이 비를 타고서

가녀리나 힘찬 빗방울로

아파트 담 옆에 무심코 서있는

라일락 뿌리를 잘게 두드리며

멈추어 무뎌진 내 이마를

부드럽고 날렵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풍성히 적시고 있다

잠에서 꺁 나는 수천의 나비가 되어

공중에 푸르게 날아올라 날개에 묻은

어제의 습기를 햇빛에 털어 말린다

 

신문배달 소년의 무거운 팔 위

때 늦은 경비 아저씨의 피곤한 새벽잠 곁에

봄은 잃었던 판도라의 상자 하나씩 몰래 놓아두고

멀리서부터 조여매고 왔던

운동화 끈을 풀어놓고 비를 따라간다

마음껏 춤추며 놀다가

새롭게 깃을 갖추는 나에게 손 흔들며

봄이 가고 있다

비를 타고서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줍니다. 그것이 '수천의 나비', '날개', '햇빛', '조여맸던 끈은 풀다', '새로운 깃'으로 나타났구요.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시어들이 너무 평이하고 낡았군요.

 

시어의 의미가 신선할 때 독자들은 감동을 받게되죠.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첫행이 도치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 효과가 별로 뛰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봄비가 힘찬 빗방울로 내리고 있는데 나비의 등장은 왠지 억지처럼보이지요.  또한 어제의 습기를 햇빛에 말린다는 것도 논리상 맞지 않지요. 물론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허무맹랑한 추상을 나열하는 것이 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지적하는 바 입니다.

 

'아파트 담 옆에 무심코 서있는'은 앞뒤 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긴장을 흐트려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멈추어', '잠에서 깬'은 없는 편이 차라리 낫겠네요.  만약 '잠에서 깬'이 새로운 각성을 뜻한다면 앞뒤에서 받쳐줄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연의 경우 1연의 이야기에서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버렸습니다. 주제를 이끌어갈 힘이 부족한 경우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나열하게 됩니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혼자만이 아는 암호를 써 놓고 흐뭇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심자가 버려야할 습관입니다.

 

도입부에서 '봄이 오고 있다'고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봄이 가고 있다'고  함으로써 한 계절을 대상으로 삼아버려 시간대의 폭이 너무 크게 나타났군요. 시의 끝 부분은 중요한 만큼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고려하고 평이한 제목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정된 시-우화(羽化)

 

봄이

비를 타고 오고 있다

가녀리나 힘찬 빗방울로

무디어진 내 이마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손으로

나의 오랜 잠을 깨워 놓는다

라일락 뿌리,

목련의 푸른 줄기를 두드리는

비를 따라

한겨울 내내 조여매었던

내 마음의 고치실을 풀어낸다

 

봄 햇살이 반짝이고

나는 새롭게 깃을 갖춘다

공중에 푸르게 날아올라

날개에 묻은 습기를 털어낸다

 

수천 수만의 날개들이

봄의 빛깔로 물들어

햇살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다.

 

7.대상 시 -가을비

 

어스름한 저녁 무렵 약속없는 빗줄기를 만나면

오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빗길 저 끝으로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가 서 계십니다

고불고불 골목마다

이름없는 들풀이 비를 맞습니다

명분 세운 고목나무도

비에 젖습니다

이리저리 이럭저럭 함께 왔으니

스스로 대견하여 손길이 다정합니다

비에 젖은 불빛이 말을 시작하자

가장들은 젖은 어깨 위에

고단한 생활을 올려놓고 바삐 갑니다

나는 맨 몸을 다시 걸으며

그거려니 하고

초라한 삶을 웃어봅니다.

 

시는 매 행이 문장으로는 독립적이되 의미상으로는 연결이 되어야만 합니다. 초심자들의 경우 한 편의 시 속에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려는 경향이 있어 자신이 본 것, 느낀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시가 산만해지고 긴장감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멋진 문장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졌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는지가 시의 성패를 가늠합니다.

 

위 대상 시는 소재들이 연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비오는 저녁 풍경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야기만 벌려놓고 그것을 다시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몰아가는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글이란 초점이 뚜렷해야 합니다.

 

지은이가 비 오는 저녁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걷고 있는 초라한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했다면, 앞의 소재들 -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이름없는 들풀","명분세운 고목나무","가장들의 고단한 생활" - 은 모두 자신과 연관된 어떤 내용들이어야 한다. 시는 주위 풍경의 감상적인 묘사가 아니다. 그 묘사 속에 자신의 감정이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이름없는 들풀","명분세운 고목나무","초라한 삶"은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표현들이다. 낡은 언어끼리, 혹은 의미없이 갖다 붙인 언어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독자들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것은 자신도 그러한 체험이나 느낌을 가졌을 때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마구잡이로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불고불 골목마다/이름없는 들풀이 비를 맞습니다" 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골목길에 들풀이 자라기는 힘들겠죠.

 

"이리저리 이럭저럭 함께 왔으니/스스로 대견하여 손길이 다정합니다"와 "비에 젖은 불빛이 말을 시작하자"의 화자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하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리저리 이럭저럭"은 불필요하게 중첩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연관성과 시어의 적절성을 고려하여 고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을비-(수정된 시)

 

어스름한 저녁 무렵 빗줄기를 만나면

오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빗길 저 끝 골목마다

이름없는 풀들이면 나무들이 비에 젖어듭니다

비에 젖은 불빛은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의 고단한 어깨 위에

초라하게 흔들립니다

나는 우산도 없이 걸어가며

삶이란 다 그러려니

가볍게 웃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