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으로 가며 - 김종해(1941~ )
인사동에 눈이 올 것 같아서
궐(闕) 밖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퍼다 버린 그리움 같은 눈발
외로움이 잠시 어깨 위에 얹힌다.
눈발을 털지 않은 채
저녁 등이 내걸리고
우모(羽毛)보다 부드럽게
하늘이 잠시 그 위에 걸터앉는다.
누군가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눈 속에 파묻는다.
궐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내 생(生)의 그리움
오늘은 인사동에 퍼다 버린다.
“먼저 온 사람들이 빌려 쓰고 있는 인사동을/ 오늘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쓴다.” 김종해 시인을 나는 인사동으로 기억한다. 마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이시영 시인과 가끔 들르던 생태집에는 김종해 시인의 ‘맛집기행’이 표구되어 있었다. 시인이 경영하는 출판사도 그 부근에 있어서 네댓 번 음식점에서 스친 적이 있었는데, 숫기 없는 나는 이시영 시인 옆에 서서 멋쩍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 김종해 시인은 아무래도 장소에 정이 깊은 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장소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즈음에는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인사동에 가보지 않은 지가 벌써 몇 해 되었다. 이제 첫사랑을 기약할 나이는 내생(來生)에나 다시 올지 모르겠으니, 서설(瑞雪) 있는 날 인사동에 나가 옛 시절의 그 사람들과 이물 없이 호기도 객기도 잉여도 서로 간에 용납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잠시 인사동을 빌린’ 적이 있다. [장철문·시인·순천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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