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솥―장석남 (1965∼ )
양평 길 주방기구종합백화점
수만 종류 그릇의 다정한 반짝임과 축제들 속에서
무쇠 솥을 사 몰고 왔다
-꽃처럼 무거웠다
솔로 썩썩 닦아
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다
푸푸푸푸 밥물이 끓어
밥 냄새가 피어오르고 잦아든다
그사이
먼 조상들이 줄줄이 방문할 것만 같다
별러서 무쇠 솥 장만을 하니
고구려의 어느 빗돌 위에 나앉는 별에 간 듯
큰 나라의 백성이 된다
이 솥에 닭도 잡아 끓이리
쑥도 뜯어 끓이리
푸푸푸푸, 그대들을 부르리

무쇠솥이 ‘꽃처럼 무거웠다’라… 아름답고 연한 생물인 꽃을 옮길 때면 행여 상할 세라 조심스러워서 힘이 들어간다. 그 조심의 무게만큼이나 무쇠솥이 화자에게는 기꺼웠나 보다. 별러서 장만했다지 않는가? 이런저런 그릇들을 좋아하고 밥상 차리기를 즐거워하는 남자들이 드물지 않다. 여자들도 그것이 책무가 아니라면 부엌살림을 더 즐길 수 있으련만.
가전제품이 아니라 무쇠솥, 그것도 닭을 잡아 끓일 정도 크기의 무쇠솥을 장만해서 우선 잡곡을 섞어 밥을 안치고 자못 호방한 유쾌함을 만끽하는 화자가 눈에 선하다. ‘푸푸푸푸’ 푸짐하게 김을 올리는 그 소리에 화자는 불현듯 사람들을 제 집에 불러들여 먹이고 싶은 넉넉한 마음이 된다. ‘푸푸푸푸’, 무쇠솥을 따라 어린애처럼 ‘푸레질’ 소리를 내며 혼자 싱글벙글했을 시인이여.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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