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씨
아주까리씨 하나를 입에 넣고 잘게 씹는다. 입에서 한 무더기 꽃이 피어난다. 입은 점점 더 커져 풀무가 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생각이 피워 올리는 폭포, 한 톨의 아주까리씨가 풀무를 돌린다. 꽃의 너울 속으로 넘나드는 바람의 혼절한 모습, 지나온 역을 향해 흔드는 손짓이 내 속에 다시 바람의 씨를 흩날린다. 바람은 언제나 늙은 꿈의 주름을 지우나니
―김재혁(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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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일
나무는 뿌리와 잎사귀와 몸뚱이로, 그리고 그가 가진 이목구비로 하늘과 밤과 낮을 모아서 씨를 만든다. 그러니 씨 안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있는 셈. 내가 맛본 것은 하늘의 맛, 밤과 낮과 꿈의 맛이었던 것.
'아주까리씨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더니 되레 생각이 깨어난다. 생각은 제 단단한 깍지를 깨고 나와 이리저리 피어난다. '입'은 '꽃'이 되고 또 점점 커져서 생각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가 된다. 불꽃 속에서 혼절하는 바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나온 역(시간)'을 향해 흔드는 손짓도 내 안에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였으니 매일매일 우리는 '혼절한 바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별 없는 새 만남이 어디 있으랴! 아주까리씨가 불꽃으로, 손짓으로, 바람으로 번신(翻身)하는 과정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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