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
잠 깨어난 오솔길 위에 …
내 권태의 벽 위에 …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 폴 엘뤼아르 (1895~1952) ‘자유’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가르쳐 준 선배가 있었다. 10대의 겉멋이었을까, 제목을 가린 한 편의 시를 보여주었다. 그 긴 시를 읽는 중엔 절절한 연애시인 줄 알았다. 당연히 기대했던 여인의 이름 대신, 마지막 줄에 등장한 ‘자유여’는 엄청난 반전이었다.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집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 실린 여러 시편들은 내 유치한 문장들의 원형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대학가에서 숨죽이고 읽었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자유’의 또 다른 번역이었고, 정희성의 ‘이곳에 살기 위하여’도 엘뤼아르를 향한 오마주로 읽혔다. 이 기시감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엘뤼아르를 멀리하려 했다.
그러나 집안의 파산으로 잠자리조차 막막했을 때, 유학의 꿈을 끝내 접어야 했을 때, 사랑의 열병을 앓았을 때, 삶의 곳곳에서 지치고 흔들릴 적마다 이 시의 단편들을 뒤죽박죽 끄적거렸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연인의 이름을, 때로는 ‘건축’을, 때로는 ‘역사’를, ‘용기’를, ‘열정’을, ‘순수’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