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1916~78) ‘나그네’
갓 스무 살에 들어선 청춘의 어느 날, 친구가 살고 있는 경주에 놀러갔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때여서 차로 10시간 이상 터덜거리는 국도를 달려야 했다. 그때는 첨성대에 울타리를 쳐놓지 않아서 아무나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 앞 풀밭에 앉아서 ‘경주가 상상보다 좀 싱겁다’ ‘도시 전체가 무덤이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누구네 집에서인지 막걸리 익는 냄새가 났다. 요즘처럼 민속주를 아무나 담글 수 있던 시대가 아니라서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집안에서 전수받은 기술로 막걸리를 살짝 만들어 먹던 때였다. 집에서 빚어 만든 가양주였던 셈이다.
그때 떠오른 시가 바로 ‘나그네’였다. 지금은 나그네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희미해졌지만 배낭이나 조그만 가방 하나 들고 불편한 교통편 대신 걸어 다니는 길손이 종종 눈에 띄던 시절이었다. 낯선 외지인에게 흔쾌히 대문을 열고 잔을 건네던 그 인심이 그립다. 친구와 함께 얻어먹은 그 막걸리 한잔이 지금도 입맛을 돋운다. 5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이호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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