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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둥

시인 최주식 2006. 3. 8. 23:29
24. 기둥

굽고 휜 목재로

대웅전 대들보…

神技의 건축기술




<안성 청룡사 대웅전 동쪽 기둥>
사진설명: 산에서 벌채한 나무를 껍질만 벗겨 기둥으로 삼았기 때문에 굵기와 곧기가 제멋대로다. 중국이나 일본의 왕실 원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모습이다.
합리성과 기능성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은 목조 건물의 기둥은 당연히 굵기가 같고 이래 위로 곧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부처님 상을 모신 대웅전과 같은 목조 권위 건축물이나 왕실의 원찰(願刹)은 모든 것이 완벽한 설계와 철저한 감독 하에 지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부재(部材)가 세련되고 완벽하게 치목(治木)되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안성 청룡사 대웅전, 화엄사 보제루, 서산 개심사 심검당 등 몇몇 사찰 건물의 기둥을 보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목조 건축에 관한 상식이 얼마나 본질과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건물로 사찰 경내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는 권위 건축에 속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건축물은 당연히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과 고급 부재를 동원해 지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이다. 실제로 중국이나 일본 또는 동남아 일대 불교국가의 금당(金堂) 건물은 잘 가공된 건축 부재(部材)와 화려한 장식, 세련된 기술을 동원해 지어졌고, 지금도 사찰의 중심 법당으로서 권위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안성 청룡사 대웅전은 겉보기에는 무언가 덜 다듬어진 것 같고, 미완성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은 산에서 벌목해 온 원목을 아래 위를 자르고 잔가지를 쳐내는 정도로 대강 다듬어 기둥으로 삼았고, 심하게 굽어서 건물 부재로는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목재를 과감하게 대들보로 사용했다. 건물 전면의 기둥 네 개는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는 편이지만, 양 옆과 뒤쪽의 기둥들은 산에서 자랄 때 모습 그대로다. 곧기나 굵기가 제 멋대로 되어 있어 한두 개의 기둥만 보면 건물이 온전히 서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 건물이 어떻게 부처님을 모시는 금당 건물로 지어질 수 있었으며, 몇 백 년 긴 세월 동안 허물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버티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구례 화엄사 보제루 기둥>
사진설명: 일렬로 줄서있는 기둥을 측면에서 보면 울퉁불퉁한 것이 불규칙하기 짝이 없다. 보제루와 같은 건물은 모나지 않은 심성을 가진 한국인만이 지을 수 있는 건물이다.
구례 화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보제루는 초기가람 형태에서 금당의 뒤쪽에 있었던 강당의 기능을 금당 앞쪽에서 대신하여 모든 법요식을 행하는 건물로 이 사찰에서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건물의 하중을 받는 아래 기둥은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나무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 그냥 사용하였다. 약간의 손질을 가한 자취는 있으나 굵기를 같게 하거나 굽은 것을 펴려고 치목한 흔적은 별로 없다. 일렬로 서있는 기둥을 측면에서 바라보면 울퉁불퉁한 것이 제멋대로다. 화엄사 보제루는 200여 년 전에 이런 모습으로 지어졌고, 그때 모습 그대로 오늘날 우리들 앞에 서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나 보제루가 이러할 진데,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서산 개심사 심검당의 기둥은 원래 자라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벽체를 모두 헐어냈다고 가정하면 심검당 일대가 굽은 고목나무들의 숲처럼 보일 것이 틀림없다. 기둥은 굽은 나무 등걸을 그냥 세워 놓았고, 횡재(橫材) 또한 너무 휘어서 집 재목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사용하였다.

기둥이나 대들보의 모양이 일반적인 목조 건축물의 것처럼 반듯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것이 치목 기술이나 성실성이 부족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인 즉, 기술 수준으로 말하면 이와 같은 건물을 지은 목수는 최고의 기술과 능력을 갖춘 명장(名匠)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청룡사 대웅전.화엄사 보제루

지붕하중 분산처리기술 절묘


대목장 신응수씨의 말을 빌리면, 건물의 시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정확하게 수직으로 기둥을 올려야 한다. 그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춧돌과 기둥 사이에 접착제를 사용하여 붙이는 것도 아니고 못으로 고정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돌과 나무를 있는 그대로 하여 돌 위에 나무가 서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굵기와 곧기가 각양각색인 목재를 사용해서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일은 같은 굵기의 곧은 나무를 사용해서 집을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성가시다. 곧은 목재로 기둥을 세울 경우는 다림보기를 통해 수직을 잡고 높이와 간격을 일정하게 세우면 되지만 굽거나 휘고, 가늘거나 굵은 목재로 집을 지을 때는 힘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루어 내는 기술이 요구된다.

청룡사 대웅전 건물을 부분별로 자세히 분석해 보면 굽고 휜 목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지붕의 하중을 분산 처리한 기술이 절묘하여 신기에 가깝다. 대들보는 위로 휘어진 나무를 사용했는데, 이렇게 하면 지붕의 수직 하중이 걸려도 밑으로 처지거나 부러질 염려가 없다. 대웅전 건물이 몇 백 년 풍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절묘한 힘의 분산과 그에 따른 완벽한 균형 때문이다. 이것은 수학적인 계산이나 정밀한 목공 연장이 이루어 낸 것이라기보다 목수들이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 터득한 ‘마음의 저울’과 ‘마음의 자’가 이루어 낸 결과라 할 것이다.

화엄사 보제루도, 개심사 심검당도 마찬가지로 건물을 지을 당시에 곧고 굵은 목재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비정형의 부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목수의 기량과, 이러한 부재로써 집을 짓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사실상 이런 모습의 건물은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교 초월한 자연의 아름다움

대목장, 공양하듯 마음의 佛事


<서산 개심사 심검당 기둥>
사진설명: 금방 쓰러질 것 같아 보이지만 긴 세월을 견뎌 온 것은 불규칙한 목재로도 힘의 균형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대목장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인은 조작과 기교는 부리면 부릴수록 그 대상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터득하고 있다. 그래서 심하게 꾸미거나 손질을 가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무를 가공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가능한 한 인공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하고,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노력’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잠재해 있던 자연주의 심성과 소박한 미의식이 자연적으로 방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조선시대 무가(巫歌) 중에 〈성주풀이〉라는 것이 있다. 〈성주풀이〉는 집과 집터를 맡아보는 성주신을 노래하는 것인데, 노래 가사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성주야 성주로다 / 성주 근본이 어데 메나 /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 / 제비원에 솔 씨를 받아 소평(小坪) 대평(大坪)에 던졌더니 / 그 솔 씨 점점 자라 소부동(小俯棟)이 되었구나 / 소부동이 점점 자라 대부동(大附棟)이 되었구나 / 대부동이 점점 자라 청장목이 되고 황장목이 되고 도리 기둥이 되었구나 /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 대활연으로 서리서리 내소서. …높은 산에 남글 찍고 낮은 산에 터를 닦아 / 휘여진 남근 굽다듬고, 굽은 남근 휘이게 다듬어 / 횡포 대포를 먹여 내여, 아흔 아홉 궁(宮) 지을 적에…”

이 짧은 노래 한 대목에 한국인이 지닌 선천적 대의성과 자연회귀 심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나무를 산에서 잘라 와 기둥감을 만들 적에 굽었거나 휜 나무를 곧게 펴는 것이 아니라, 휘어진 나무는 굽다듬고 굽은 나무는 휘이게 다듬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나 취향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을 우선시하고 긍정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하고자 마음먹고 일을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남기는 것과 당초부터 할 생각이 없어 하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인간의 의지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면 후자는 성정(性情)과 관련된 문제이다. 청룡사 대웅전의 기둥이나 화엄사 보제루, 그리고 개심사 요사체의 기둥이 비정형인 것은 목수가 단정하고 곧게 치목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그렇게 다듬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결과이다. 이것은 한국의 목조건물에서 볼 수 있는 기교를 초월한 방심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141호/ 6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