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눈길 / 고은

시인 최주식 2009. 2. 4. 22:32

눈   길
                                                                              - 고 은 -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시집 <피안 감성>(1960) -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 리 과 원  (0) 2009.02.04
산 유 화  (0) 2009.02.04
농무 / 신경림  (0) 2009.02.04
길 / 김소월  (0) 2009.02.04
국화 옆에서 / 서정주  (0) 2009.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