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고 풍 의 상

시인 최주식 2009. 2. 6. 21:11

고 풍 의 상
                                                                              -  조지훈  -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胡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문장3호>(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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