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송 동시 - 제 46 편] 씨 하나 묻고 / 윤 복 진
- 윤 복 진
아이들은 '호기심 천사' - 윤 복 진
봉사 나무
씨 하나
꽃밭에 묻고,
하루 해도
다 못 가
파내 보지요,
아침 결에
묻은 걸
파내 보지요.
(1949)
- ▲ 일러스트=윤종태
이 시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봉사나무(봉숭아) 씨 하나를 꽃밭에 묻었다. 씨는 아직 채 발아되지 않은 작은 우주다. 이 우주는 잎과 줄기, 그리고 꽃을 숨기고 있는 생명의 자궁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조그마한 꽃씨 속에 그토록 어여쁜 꽃송이가 숨어 있을 수 있는가. 궁금한 아이는 직접 꽃씨를 심어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그런데 '씨 하나를 묻고' 나니 이제 호기심이 동해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아이는 씨를 묻은 지 '하루 해도 다 못 가' 그 씨를 다시 파내고야 만다.
이 '호기심 천사-어린이'를 시 속으로 끌고 온 윤복진은 190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과 호오세이대학에서 공부했다. 1920년대 《어린이》지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게 된 그는 윤석중, 이원수, 신고송, 서덕출, 최순애 등 같은 잡지 출신 시인들과 '기쁨사'라는 동인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김수향, 혹은 김귀환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사무국장을 지내고 6·25 때 월북한 뒤에는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다.
"먼 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그리운 고향〉) 광복 이후 미국 민요곡조에 맞추어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시는 그의 월북과 더불어 오랫동안 작사자를 모른 채 불려 왔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가지랴. "해 저문 바닷가에/ 물새 발자욱,// 지나가던 실바람이/ 어루만져요,// 고 발자욱 예쁘다/ 어루만져요."(〈물새 발자욱〉)로 시작하는 시 역시 익명의 바다로 떠나간 지 오래다.
다른 많은 월북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복진이 우리 문학사에 등재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동향의 작곡가 박태준이 그의 시만으로도 1939년 《참새발자국》이라는 동요집을 낼 정도로 일찍이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늦게나마 1997년 창비 출판사에서 1949년에 나온 그의 동요집 《꽃초롱 별초롱》을 다시 펴냈다. 경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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