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가을바람
“저리도록 쓸쓸한 가을바람 / 밤 깊어가도 잠은 안 와 / 저 벌레는 어이 그리 슬피 울어 / 나의 베갯머리를 적시게 하나.” 한국 근대불교의 고승 경허 스님이 쓴 ‘슬픔’이라는 시이다. 요즘 나는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 시를 들여다보고 있다. 처서 지나고 바람이 바뀌었다. 뭉툭하고 늘펀하고 게으르던 바람이 다소는 끝에 각이 생기고 늘씬해지고 동작은 재고 빨라졌다. 속초에 사는 한 선배 시인은 “여긴 완전히 가을 날씨야. 서늘하네, 모든 기운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모든 기운이 서늘하다는 그 시적인 문자를 받고서 나는 잠깐 벙싯거렸다.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무더위와 폭우와 벼락 치는 여름날을 무사히 지나온 우리는 이제 가을 문턱마저 넘어섰나 보다. 과수원을 지나다 보니 배는 제법 굵어졌고, 벼는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손꼽아 보니 추석도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에 나는 당나라 때 문인 한유의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유는 당나라 시인 가도가 쓴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자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민다”라는 즉흥시를 듣고서 민다는 뜻의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뜻의 고(敲)가 좋겠다며 시를 고쳐준 인물이다. ‘퇴고’라는 말 또한 이 고사로 인해 생겨났다.
한유의 ‘불평즉명(不平則鳴)’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한유는 극진한 문장의 요건을 이 ‘불평즉명’설로 요약했다. “풀과 나무의 소리 없음도 바람이 이를 흔들면 운다. 물의 소리 없음도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운다”라고 했다. 울음(鳴)은 평평한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비롯되는데, 가령 맺힌 것이 가슴속에 고여 있다가 터져 나올 때 울음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우주적인 차원으로 넓혀 해석했다.
“하늘의 때라는 것도 잘 우는 것을 가려 뽑아 그것을 빌려 울게 하는 것이다. 새로 하여금 봄날에 울게 하고, 우레로 하여금 여름날에 울게 하고, 벌레로 하여금 가을날에 울게 하고, 바람으로 하여금 겨울날에 울게 한다”라고 했다. 가을날의 풀벌레 소리가 유독 사람의 애를 끊어 놓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또 한유는 사람이 내는 소리의 가장 깨끗하고 묘한 것이 말이라고 보았다. 이 견해는 나의 마음을 적잖이 불편하게 했다. 한유의 생각을 따라 읽다가 문득 평소에 내가 쏟아내는 속악한 말들의 울음을 되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에 나는 평담(平淡)한 마음을 지닐 수 있으며, 또 어느 때에 정묘한 울음을 내놓을 수 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쑥불쑥 내놓는 말이 두려워졌다.
‘낙출허(樂出虛)’, 즐거움은 마음을 비우는 데서 비롯된다는 뜻도 최근엔 새롭게 익혔다. 마음을 고요하고 한가하게 지니고, 분수에 넘치게 바라는 마음을 반절 접어 둘 때 삶의 즐거움이 생겨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글귀에 묶여서 하루 이틀을 보냈고 이 글귀를 올가을 나의 화두로 삼겠다는 생각을 했다.
풀밭 풀잎에 함초롬하게 내려앉아 있는 이슬을 보게 된다. 가을바람에 아침 이슬은 곧 마르겠지만 당대 문인 위응물의 ‘연잎 이슬’이라는 시를 떠올려 이 가을이 온 소식을 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가을 연잎 속 이슬 한 방울 / 맑은 밤 저 깊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 / 옥쟁반에 살며시 옮겨 부으면 / 없던 모양 도르르 구슬이어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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