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시 / 이생진
내 육체를 보려면 3000원이 든다
시집 한 군 값보다 천 원이 싸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선다
이상한 육체들이 많구나
어찌하여 저 젓가락 같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울이 돌아앉는다
40대만 해도 거울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니 50대에도 가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는데
이상하구나
70으로 들어서니 모두들 외면하는구나
나도 나를 외면하려 하는구나
흙 밖으로 밀려난 소나무 뿌리같구나
배꼽을 봐도 탯줄이 잘린 후 아무 쓸모 없이
뜻 없는 상처로 입을 다물고 있구나
저것이 탯줄을 잡고 나왔을 때는
힘찬 울음으로 태어났음을 알렸는데
이젠 죽음을 알릴 힘조차 없구나
시 한 줄 간직하기에도 힘드나 보다
그래서 수의를 입히고 꼭꼭 묶는 것일까
자꾸 줄어도는 욱신의 욕망
3000원을 내고 나 혼자서 봤지만 돈이 아깝구나
하기야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봐주나
남들은 3000원을 줘도 외면할 육체
다 갔구나
때 밀 필요도 없이 다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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