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시인 최주식 2010. 1. 24. 20:35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어둡다. 팔을 가슴에 엑스자로 모으고 반대편 팔뚝을 쓰다듬는다. 천장에 등이 달려 있지만 초여름의 햇살에 익숙했던 눈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여자는 깊은 우물 같은 암흑에 눈을 감는다. 여자의 몸 전체가 사라진다. 균형감마저 잃어버린 여자는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다시 눈을 뜬다. 암순응이 시작되자 흑백의 모노톤 공간에 먹물처럼 섬세한 농담의 변화가 나타난다. 움집의 벽과 천장에 가면과 창, 방패, 기타 전리품들이 수묵 같은 담채의 풍경으로 서 있다. 섬세하고 깊은 빛 사이로 채도 낮은 사진처럼 몇 가지의 엷은 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무언가 여자를 노려본다. 뒷걸음질 치다 중심을 잃어 넘어진다.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커진다.

 

  여자가 사육사로 일하는 놀이동산 사파리 입구에 ‘아프리카 빌리지’를 설치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겨냥한 이벤트다. 어제 저녁 퇴근하는 길에 사파리 관리인이 여자를 불러 세웠다. 새로 온 것들 한번 구경해 봐요.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긴 놈이에요. 여자는 빌리지 입구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 황갈색 칼라하리에 랜드로버가 서 있고 그 앞에 사냥총을 든 사파리 관리인과 아프리카 원주민이 서 있었다. 그 발치쯤 고개를 힘없이 떨군 임팔라가 쓰러져 있었다. 임팔라의 꺼져가는 눈빛이 사진 밖의 여자를 향했다.

 

  가면들이 검은 윤기를 띠며 여자를 내려다본다. 적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듯 기괴하다. 여자는 일어나 흑단목의 윤기 나는 가면 하나를 얼굴에 갖다 댄다.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천장에서 사지를 펼치고 있는 표범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다. 표범의 이빨이 금방이라도 심장에 박힐 듯 날카롭다. 가면을 쓰고, 창 하나를 두 손으로 번쩍 든다. 표범의 눈에 창끝을 겨냥한다. 가면을 쓰고 창을 들고 있는 한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다. 돌아서 나오는 여자의 뒤통수에 수많은 눈들이 와서 박힌다. 표범의 눈, 가면의 눈, 관리인의 눈, 임팔라의 눈…….

 

  동물원 유인원관에 도착한 여자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사육사 보조 자리를 얻은 후부터 새벽 5시 이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다. 8시까지 출근하면 되지만 여자는 그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퇴근한다. 겁 없이 달려드는 침팬지들에 놀라기도 하지만 집보다 동물원이 여자에겐 더 편하게 느껴진다. 유인원관 입구에서부터 풍기기 시작하는 냄새와 갖가지 동물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분주한 사육사들의 발걸음은 오감으로 잘 빚어진 편물처럼 몸에 잘 맞는다.

 

  포육실의 순이는 밤새 열이 내렸는지 숨소리가 고르다. 며칠 동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여 사육사들을 긴장시켰다. 윤의 손길이 신기하기만 하다. 처음 순이가 이곳에 왔을 때 사육사들 사이에서 ‘환자’로 통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온 건지 자폐증세가 뚜렷했다. 동물원으로 팔려가는 침팬지의 일부가 밀렵으로 인한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문제는 새끼 침팬지를 사로잡기 위해, 새끼 곁을 떠나지 않는 어미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법으로 팔려온 침팬지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다.

 

  이곳 동물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순이는 아무것도 안 먹고 내실에서 버텼다. 청소하기 위해 내보낼 때 폭죽을 터뜨려야 했다. 일본에 있는 동물원의 침팬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어 사육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윤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여자에게 순이를 맡기면서 ‘사육사 보조’라는 꼬리표를 떼주었다. 여자는 순이를 인공 포육실에서 분유를 먹여가며 키웠다. 순이가 처음 여자의 손에 맡겨졌을 때 째지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여자의 손을 할퀴었다. 동물원에 인파가 몰릴 때면 스트레스 받은 순이가 아이의 바나나를 뺏는 등의 돌발 행동을 해 동물원의 골칫덩이가 되기도 했다. 녀석과의 몸싸움으로 연일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 퇴근 후의 일이었다. 여자는 쉽게 정이 가지 않는 수컷 침팬지 녀석에게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자가 사육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자 하얗게 센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윤이 번개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간간이 노랫소리가 낮게 새어 나온다. 사납다고 ‘일진’으로 불리는 번개의 눈빛이 순하디 순하게 누그러들어 있다. 개심하여 고향에 돌아온 탕아처럼 털을 가지런히 눕히고 윤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어제 저녁 난동을 부려 인조나무를 부러뜨린 게 정말 저 녀석 맞나 싶다. 다른 사육사였다면 우리 속의 바구니와 기물들이 몇 가지는 파손되도록 난동을 부렸을 것이다. 그 부랑아 같던 번개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윤 앞에서는 아기처럼 얌전해지고 만다. 윤은 낮이 되면 더워질 텐데도 목에는 어김없이 손수건을 맸다.

 

  순이 때문에 못 주무셨을 텐데 좀 더 주무시지 않고…….

 

  잠이야 죽으면 실컷 잘 텐데 뭘.

 

  윤의 톡 쏘는 말은 항상 여자를 주눅 들게 한다.

 

  그나저나 사육장 공기가 너무 탁해. 이러니 호흡기 질환이 생기지. 냄새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아. 자기네들 방이라면 저렇게 하겠어? 쓸데없이 잡담하는 시간에 우리 청소나 한 번 더 하지.

 

  여자가 사육사 보조로 들어올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윤 소장이다.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전날, 침팬지 가족이 한꺼번에 동물원에 수송되어왔다. 일손이 급했던 탓에 여자를 들이긴 했지만, 일 년 동안 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윤이 어렵기만 하다. 언젠가는 윤 소장 같은 유능한 사육사가 되는 게 여자의 바람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이곳에 온 후의 가장 큰 변화다.

 

  윤은 사육사가 아니라 ‘통역사’로 통한다. 침팬지와 오랑우탄 등, 유인원관에 있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구별하는 것 역시 윤이다. 아무도 모르게 동물들의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동료들은 말한다. 하지만 아부할 일이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르고 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저러니 평생 혼자 살지. 동생 하나도 건사 못하면서 누구를……’하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그에게 사육이나 조련을 배운 다른 사육사들은 머리를 내젓는다. 시월이 미미를 낳다가 패혈증으로 죽음 앞에까지 갔다가 온 일이 있었다. 수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을 놓았을 때 윤은 한 달 동안 고집스럽게 밤마다 시월이와 함께 지냈다. 시월이가 링거를 빼고 미음을 먹기 시작했을 때 수의사는 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순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설사와 열로 신경질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던 순이를 붙들고 여자가 씨름하는 것을 보고 윤이 잠시 순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여자가 결린 어깨를 두드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귀를 의심했다. 평소 빠르고 새된 소리로 고함치는 윤이었기에 낮고 느린 음색과 간절함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낮에 보았던 그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그새 순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 후로도 경이롭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끔 그의 노랫소리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또 가끔 다른 동물들을 보호하는 윤의 손길에 질투를 느꼈다.

 

  그런 그도 이곳을 떠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사직서를 내고 떠났던 그는 다음해 여름이 다 갈 무렵 다시 돌아왔다. 한여름 고릴라가 더위에 탈진하고, 시름시름 아파가는 동물들이 늘어났다. 수의사가 상주해야 할 만큼 사태가 심각해지자 동물원 측에서 윤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순이가 괜찮을까요? 방학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방학이 시작되면 공연을 시작해야 한다. 아직은 불안한 게 사실이다.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나? 기다리는 수밖에.

 

  조류관의 새소리로 사방이 시끄러워진다. 사육장이 분주해진다. 여자는 침팬지들을 불러 모은다. 순이는 늦게야 어기적거리며 나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다른 친구들을 눈으로만 쫓는다. 여자는 침팬지들을 차례대로 안아 본다.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순이를 안고 우유병을 물린다. 태어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유병을 빤다. 순이의 손가락이 여자의 머리카락 사이를 오간다. 손금이 깊고 마른 가죽처럼 매끄러운 손바닥이 여자의 목을 간질인다. 긴 팔이 목을 착 감아 도는 맛이 좋다.

 

  얼마 전 심리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그림 그리기와 음악 감상이 효과가 좋아서인지 지금은 여자를 보고 금속성 비명을 지를 때와는 다르다. 옷고름을 매달라고 달려오고, 여자의 머리 위에 올라가 앉기도 한다. 길들여진 동물은 보통 자신의 존재가 상대에게 가장 순하고 약한 모습으로 비치기를 바란다. 여자 앞에서 순이는 드러눕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이미는 자세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털 고르기를 허락한다. 그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여자의 두 손이 목을 감고 있어도 결코 자신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여자의 꿈에도 순이와 침팬지들이 등장한다. 이젠 그들의 움직임만으로도 병에 걸렸는지, 어떻게 싸움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때마다 여자는 왠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가 되자 공연 연습이 시작된다. 윤은 침팬지들을 불러 모은다. 음악 소리에 침팬지들은 열을 맞춰 서서 손을 잡는다.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미미는 ‘인사!’ 라는 조련사의 구령에 따라 머리가 발에 닿도록 고개를 숙인다. ‘미미’ ‘자람이’ ‘마루’등 다섯 마리 침팬지가 점프하여 링 통과하기, 물구나무서기, 윗몸일으키기, 장대 발 걷기, 응급구조 활동 등을 선보인다. 침팬지들은 자기 키 높이의 세 배 이상을 거뜬히 점프한다. 음악 소리에 포육실에서 나온 순이가 여자의 손을 잡아끈다. 악기나 놀이기구를 꺼내달라는 뜻이다. 여자는 한복 두 벌을 캐비닛에서 꺼낸다. 순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족두리를 씌운다. 여자는 남자용 무명 한복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머리에 무명끈을 맨다. 순이와 여자의 공연은 ‘꼭두각시’와 ‘실로폰 연주’ 다. 귀에 익은 음악이 나오자 순이는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실로폰 연주를 무사히 마친 순이는 자신의 음악에 심취한 듯 마지막 음을 치고서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구경하던 사육사 몇몇이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친다. 순이가 조련을 일찍 시작한 다른 침팬지보다 습득 속도가 빨라 변수가 없는 한 공연은 성공할 것이다. 이럴 때는 자폐증 특유의 집중력이 도움이 된다. 윤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둠이 내리면서 우리의 잠자리를 챙기고 침팬지들을 안전하게 격리시킨다. 라커룸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다. 사파리 앞을 지나다 아프리카 빌리지 앞에 선다. 어둠 속에 나란히 서 있는 빌리지는 마치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자물쇠 두 개를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잠근다. 마지막으로 걸쇠를 건다. 여자는 이곳을 전망대라고 부른다.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집을 원했다. 12층 오피스텔의 가장 높은 층,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땅을 밟고 살지만 여자에게 땅이란 진도 2의 미진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다가 갑자기 강진이 되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끝없이 추락하고 마는 마른 땅 위의 크레바스다. 거울을 본다. 쇼트 헤어에 아직은 소년 같은 인상의 작고 여윈 여자가 서 있다. 여자의 키는 열두 살에서 멈추었다. 여자에게 시간은 정지된 듯하다. 동심원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일들이 지나갔음에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다. 눈높이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왠지 위협적이다. 10센티미터가 넘는 통굽 구두를 신어봤지만 세상은 더 휘청거리고 불안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차가운 생수를 마신다. 언젠가 냉장고에 먹을 것으로 가득 찼던 적이 있었다. 냉동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동안 소시지를 입에 넣었고 초콜릿을 녹여 크래커에 찍어 먹었다. 여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몸을 만들고 싶어 했다.

 

  여자는 전화기의 자동응답기를 켠다. 목소리 듣기 힘들구나.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라 더 낯설다. 언제 집에 오냐? 쿠션의 술을 한 올 한 올 잡아당긴다. 여자가 집을 나올 때 마지막으로 본 것은 미용실 가위를 들고 있는 엄마의 등이다. 처음 집을 떠나온 건 고 3 때다. 입시생을 위해 만든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지금은 직장을 핑계로 따로 나와 살고 있다. 엉덩이까지 치렁대던 머리를 열두 살에 자른 후 한번도 기른 적이 없다. 여자가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반대하지 못했다. 그날 엄마는 두 번이나 집게손가락 안쪽에 상처를 내었다. 그것은 처음 미용기술을 배우는 초보자나 저지르는 실수였다. 빗자루처럼 깡총한 머리를 가진 거울 속의 딸을 엄마는 보지 못했다.

 

  사파리 한가운데 서 있는 여자를 본다. 꿈은 칼라하리를 지나 세렝게티 공원의 어느 숲 속에 여자를 내려놓았다. 여자의 잠 속에서 침팬지들이 뛰어다닌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여자는 동물들과 이야기를 한다. 마른 바람이 여자에게 불어 닥친다. 표범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다. 발톱이 여자의 숨구멍을 뚫기 직전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눈을 뜨자 검은 구멍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여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커튼을 겹쳐 여민다. 절굿공이처럼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거울 속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린다. 제 몸이 뜯기는 것을 보면서도 저항 못하는, 그래서 수치에 떠는 눈이다. 냉장고 옆에 걸린 가면을 얼굴에 대어본다. 움집에 걸려 있던 가면 중 가장 무서운 얼굴이다. 어디선가 풀숲을 헤치고 사사삭 도망가는 움직임 소리가 들린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얼굴이 여자를 본다. 거울 속의 여자는 강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 아래 여자는 숨는다. 아프리카 빌리지에 있던 창을 떠올린다. 뾰족한 창끝이 누군가의 가슴 한복판을 찌르게 되기를 바란다.

 

  언제부턴가 여자는 늘 혼자였다. 어쩌다 사귀게 되는 남자는 하나같이 마초였고 폭력적이었다. 여자는 가학에 끌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여자에게 강한 것은 공포이자 곧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했다. 주위에 착한 남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순한 눈빛이 오히려 여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한 남자만이 여자를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늘 명령했고, 그런 명령에 순종적인 여자를 내버려둔 채 남자들은 떠났다.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냐. 아마 넌 평생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팔을 벌리고 손목을 위로 꺾는다. 손바닥으로 천천히 공기를 밀어내고 츠으, 하며 숨을 내쉰다. 간과 폐의 화기를 빼는 방법이다. 하나, 둘, 셋, 넷, 여자는 천천히 헤아리며 호흡한다. 여자에게 우울증 약을 처방하던 의사는 말했다. 동물을 키워보세요. 개나 고양이, 물고기나 새 아무거나 좋아요. 그때 여자는 물었다. 침팬지는 어때요?

 

  친구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허공에 매달려 있을 때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키 제한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고 뙤약볕 아래에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땀이 대책 없이 흘렀고, 열기는 바닥을 녹여버릴 듯했다. 여자는 공중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 안으로 뛰어들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우리 속의 침팬지가 여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12센티미터의 통굽 구두를 놀이동산의 악어에게 던져버렸다. 졸업 후 면접에서 수도 없이 떨어진 여자는 알바를 전전했다. 동물원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인간의 외모 따위에 관심이 없다.

 

  자리에 다시 누운 여자는 윤이 번개에게 불러주던 노랫소리를 떠올린다. 윤의 노래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을 품은 수면제처럼 잠에 빠져들게 하는 신비한 묘약 같다.

   

  아침부터 놀이동산이 술렁인다.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다. 퍼레이드와 동물쇼 등 리허설들이 잇따라 진행되어 긴장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다. 미미와 보람이가 털 고르기 하는 것을 기웃거리던 순이가 거울 앞을 어슬렁거린다. 영장류 동물 중에서도 침팬지만이 거울 속의 자신을 알아본다. 표정이 불안해 보인다. 좀 전까지 순이와 쫓기 놀이를 하던 미미가 놀이가 지루해지자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시월이가 달려와 미미를 등에 업고 순이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순이는 고개를 기역자로 어깨에 파묻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마루는 엄마 품에서 털 고르기를 받느라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다. 순이보다 좀 늦게 태어난 자람이는 보람이와 공중에 매달아 놓은 타이어 사이를 오간다. 자람이는 엄마가 없지만 형인 보람이가 엄마 노릇을 대신 해주고 있다. 침팬지들은 두 살이 넘도록 어미의 젖을 빨고, 어미의 배나 등에 붙어산다. 다 자란 수컷도 장난치다 다치면 어미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순이는 혼자 거울을 본다. 주둥이를 쭉 빼고 앓는 소리를 내다 여자를 보자 슬그머니 거울 뒤로 숨는다.

 

  장막이 찢기듯이 날카로운 비명이 공기를 가른다. 조리실에서 주문한 사료를 검사하던 여자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여자가 달려 나가는 동안에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뾰족하게 날이 선 울음이다. 침팬지 무리가 순이를 둘러싸고 있다. 보람이와 번개가 털을 바짝 세워 실제보다 더 크게 몸을 불려서 위협하고 있다. 순이는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질러댄다. 엄마 침팬지들이 서둘러 제 새끼를 감싸 안고 우리 안으로,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순이가 눈치 없이 보스의 영역에 침범했을 것이다. ‘일진’이라는 별명답게 번개는 이 우리에서 서열 1위다. 순이의 서열은 꼴찌다. 누구도 순이를 옹호하지 못한다. 지난번에는 번개의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사나운 번개를 다른 우리로 격리시키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동물도 사람하고 똑같아. 피한다고 될 일이야? 그때마다 윤이 반대했다.

 

  여자는 달려가려다 걸음을 멈춘다. 그동안 순이가 다른 침팬지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마다 여자는 달려가 침팬지들을 몰아내고 순이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번번이 일은 더 커지기만 했다. 어쩌면 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주먹을 불끈 쥐고 꼼짝 않고 서서 지켜보기만 한다. 제발 순이야, 덤벼봐. 덤벼, 제발. 몇 초 기다리는 동안 여자의 손안에 땀이 고인다. 순이에게 날고기를 먹여서라도 사납게 길들여야 했을까. 돌아가 위로 받을 곳 없는 순이의 금속성 비명은 어느새 낙담하고 절망하는 흐느낌으로 바뀐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여자가 다가가자 순이는 여자에게 와락 안겨든다. 순이의 심장이 팔딱팔딱 뛴다. 그 울음소리에 맞춰 여자의 가슴이 죄었다 풀렸다 한다. 여자는 손바닥으로 순이의 가슴을 지그시 덮어준다. 손바닥에 작은 몸부림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털의 촉감과 가냘픈 뼈의 느낌, 여리게 파득거리는 심장의 떨림이 동시에 전해진다. 여자는 순이의 신음 소리에서 어둠 속의 비명을 듣는다. 여자의 심장이 함께 뛰기 시작한다.

 

  가슴속에 날이 선 칼날 하나가 춤을 춘다. 아무것도 가릴 것 없는 뙤약볕에 서 있는 듯, 바싹 마른 몸이 되어 흩어진다. 그럴수록 여자는 순이를 더 꼭 끌어안는다. 갑자기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는가 하더니 바닥으로 주저앉고 만다. 또 쓰러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 정신을 모아보지만 여자의 손끝 발끝이 젤리처럼 흐물거리다 사라진다. 심장만이 살아서 펄떡이며 경련을 일으킨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분다.

 

  잠결에 순이가 숨 가쁘게 우는 소리를 듣는다. 끈적끈적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사악한 기운이 일듯 몸에서 불덩어리가 솟는다. 목덜미가 피로 물든 순이가 다리를 떨며 번개의 발밑에 쓰러져 있다. 번개는 검은 털을 곧추세우고 사납게 입을 벌리고 있고, 이와 혀는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그 사이로 검은 피가 흐른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콧김을 뿜으며 가슴을 벌렁거린다. 열에 허덕이던 5월의 밤, 빈집, 빗장이 열려 삐그덕거리는 철문,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던 은행나무, 그리고 그날의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차례대로 여자를 휘감아 돈다.

 

  그날은 캠프 행사로 피곤했지만 신열이 남아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자정 무렵까지 엄마를 기다리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때였다. 여자는 불쾌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에 잠이 깼다. 긴 머리카락은 땀과 눈물로 범벅 되어 목과 얼굴을 칭칭 감았다. 옆집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은 청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다. 여자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지만 누구도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다음 날 세상은 너무 평온한 얼굴로 찾아왔다. 동네 상가 연합에서 나들이를 갔던 엄마는 평소처럼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주방창의 흰색 밸런스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셨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샐러드에 넣기 위해 들었던 케첩 병에서 흘러내린 케첩이 여자의 옷을 적시고 있었던 것만 빼면. 여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층계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발이 쑥 미끄러졌다. 누가 뒤에서 잡아채는 것처럼 뒤로 굴러 떨어졌다. 여자는 병원 몇 군데를 전전했다. 간호사들이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다가 여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을 딱 다물어버리는 풍경과 마주했다. 한 아이가 여자의 핸드폰 고리를 만지려고 했을 때 에비, 하며 아이를 끌어당기던 모습. 세상은 여자에게 그런 그림으로 각인되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어둠이 모든 걸 덮어버렸고 세상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여자에게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비처럼 천재지변이었고 사고였다.

 

  어느 날, 단짝이 여자를 은밀하게 불렀다. 단짝은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녔다. 돌아앉아 등을 구부리고 옷을 걷어 올렸다. 등은 시간을 달리해서 생긴 붉고 푸른 멍 자국이 병치 혼합되어 보라색 꽃밭을 이루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짙은 꽃잎에 손을 갖다 대고 입술을 묻었다. 그 아이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충격으로 키가 안 자랄 수도 있을까? 여자는 물었다. 눈이 멀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있었던 고아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다섯 살이 넘어서 갑자기 야뇨증에 걸린 애가 있었어. 화가 난 원장 엄마가 오줌 싼 옷을 아이의 얼굴에 문질렀대. 그 후부터 그 아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여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나 사레 걸릴 때, 혹은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나 이름도 모르는 묘비를 지나치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허락 없이 해약된 보험처럼 여자의 인생은 살아보기도 전에 반 토막이 난 것 같았다. 해답 없는 숙제를 마주 보며 웃음을 상실한 엄마에게 바짝 약이 오른 고추처럼 맵게 굴었다.

 

  출근하자마자 윤의 호출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여자가 사육사 보조로 들어올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윤 소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얼마 전 번개의 싸움이 있었을 때였다. 새로 들어온 녀석 하나가 번개를 건드렸다. 둘은 볼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다. 우리 안에 피가 낭자하게 뿌려져 있었다. 두 침팬지의 싸움을 진정시키는 도중에 여자가 쓰러졌던 것이다. 그때도 윤은 안절부절 못하며 여자 주위를 서성거렸다. 혹시라도 권고사직 같은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윤을 보면 늘 가슴이 떨렸다.

 

  유인원관 뒤로 난 오솔길을 나란히 걷는다. 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걷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여자를 데리고 간 곳은 오솔길 끝에 있는 작은 쉼터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여자도 가끔 오는 곳이다. 순이를 달래느라 지치거나 윤에게 호되게 혼나고 난 후면 여자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구를 제외한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혼자서 마음을 달래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늘 혼자 왔던 곳에 윤과 함께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여자는 주위를 살펴본다. 느티나무의 풍성하게 뻗은 가지와 잎들이 솜이불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쉼터 중앙의 연못에는 싱싱한 초록의 연잎이 그사이 우산만큼이나 자랐다. 소금쟁이가 지나갈 때마다 동심원이 물결을 이룬다. 여자를 감쌌던 팽팽한 긴장과 얼음처럼 굳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린다.

 

  동생과 자주 오던 곳이었지.

 

  벤치에 앉아서 윤은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하곤 더 이상 아무 말이 없다. 여자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다른 사육사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윤의 눈길이 여자의 눈을 스쳤다가 연못으로 향한다.

 

  동생은 자기 전에 늘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했지.

 

  그때로 되돌아간 듯 입가에 웃음이 희미하게 걸렸다 사라진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비치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이건 어머니가 예전에 불러주던 노래였어. 평소 노래라고는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자리에 누우면서부터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거동도 못하고 누워서 지냈거든. 첫눈이 오던 날 이불 속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불렀어. 그런데 어머니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마를 찌푸렸어. 지금 생각해보니 아픈 걸 참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거야.

 

  때마침 연잎에서 물방울이 투둑 흘러내린다. 윤이 돌을 던져 연못 속의 구름을 흩뜨린다. 연잎 속의 이슬이 바람결에 살랑이다 물 속으로 굴러 떨어질 때마다 물방울 소리가 청명하다. 어떤 마음도, 어떤 말도 순화시켜줄 것 같은 기운이 고요하게 퍼진다. 어떤 생각을 해도 명상이 되고 사색이 되고 종국에는 썰물처럼 모든 찌꺼기를 쓸어갈 것 같다.

 

  삼촌 집에서 쫓겨났을 때 동생하고 뒷산에 올라갔지. 해가 있을 때는 가재 잡고 나뭇가지로 병정놀이 하고 재밌었어. 깜깜해지니까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지. 둘이 껴안고 밤을 지새웠지. 잠이 오지 않았어. 무슨 소리 안 들리느냐고, 나무 뒤에 누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동생은 무서워했어. 겉옷을 벗어 덮어주고, 동생이 잠이 들 때까지 노래를 불렀어.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부르던 노래를 불러주었어. 아버지는 가끔씩 집에 돌아와서도 숙모 말만 믿고 버릇 없다고 매질만 했으니. 그때마다 동생은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했지. 어쩌면 그때 내가 알고 있는 노래를 모두 불렀을 거야. 동생은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도 잠이 들지 않았어. 또 다른 거 없어? 또 없어?, 하면서. 아무 노래든 부르다 보니 모두 다 자장가가 되었어. 나중에 동생이 말하더군. 형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면 나쁜 생각이 안 나. 나쁜 꿈도 안 꾸고. 꿈에서도 형 자장가 소리가 들려. 그러면 나쁜 괴물들이 다 도망가.

 

  윤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왔어. 혼자만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녀석이 어떻게 알고 가방에 제 짐을 챙겨 넣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질 않겠어. 나 두고 혼자 갈 거야, 형? 그렇게 묻는데 차마…… 차라리 그때 그냥 놔두었더라면…….

 

  윤의 마음이 폭포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자가 두려운 눈으로 묻자 윤은 고개를 떨군다.

 

  제법 규모가 있는 농가에서 가축 똥 치우는 것부터 시작했어. 주인 부부 인심이 후해서 방값을 따로 내지 않고서도 농가 빈방을 쓸 수 있었어. 따뜻하고 배부르고 아무 걱정이 없던 때였어. 2년 후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지만. 그때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적이 없었어. 커서도 동생은 취기를 핑계 삼아 형, 나 아직도 형이 불러준 자장가 기억난다, 하고 어린애처럼 말하곤 했지. 애도 아니고 무슨 자장가냐. 다 큰 녀석이……. 멋쩍어하면서도 음정 박자 어색하기만 한 노래로 밤을 새웠지. 노래에 푹 빠져서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어. 그때 알았어. 자장가를 부르는 사람도 위로가 된다는 걸.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지. 잘 마른 성냥처럼, 누군가에게 부딪치기만 하면 활활 타오를 것 같던 몸뚱이가 한순간이지만 부드러운 솜뭉치처럼 변하는 게 느껴졌어. 내 삶에서 가장 평화로운 때가 있었다면 아마 그때였을 거야.

 

  두 사람의 숨소리가 숲에 묻혀, 사람이 숲의 일부라고 느껴질 만큼 고요해졌을 때 윤은 다시 말을 잇는다.

 

  동생이 여기서 일하다…….

 

  윤은 고백성사 하듯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묻는다.

 

  그날은 동생이 비번이었는데…….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어. 창문이 밤새 덜컹거렸지. 가을밤에 빗소리는 왜 그리 추적거리던지. 우리 신축 공사 중이었는데 크레인 운전 부주의로 축대가 무너졌어. 우리 일부가 파묻혔는데, 하필 동생이 거기 있었어. 비가 와서 공사가 중단된 줄 알고 크레인 기사는 술을 마셨대. 그런데 그날 나 대신 동생이 나갔어. 내가 왜 그 아이를 보냈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아. 그렇게 하찮은 이유로 내가 그 아이를…….

 

  윤의 시선이 커다란 연잎 위에 머문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맑은 수정구슬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여자의 손이 긴장으로 오그라든다.

 

  동생이 죽고서도 크레인 기사는 여전히 남아서 공사를 계속했어.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보다는 남은 사람을 동정했지. 결국 내가 떠날 수밖에.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지더군. 그 일 년 사이에 머리가 다 세어버리더군. 비 오는 날은 더 미칠 듯이 동생이 보고 싶었어. 그럴 때는 저 녀석들을 보러 몰래 왔다 가곤 했지.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어느 날 크레인 기사를 놀이공원 앞 포장마차에서 만나게 되었지. 죽음의 신이 구애를 하는 것 같았어. 크레인 기사를 따라갔어. 어떻게 할 작정으로 따라갔는지도 몰라.

 

  윤은 거기까지 말하고 목에 두른 손수건을 푼다. 턱에서부터 귀 아래까지 죽 그어져 있는 흉터가 선명하다. 무언가 단숨에 지나간 자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난 누군가를 죽일 용기도 없는 놈이었어. 정신이 들고서야 알았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그만 잊어야 한다는 걸. 운이 좋아 살고 보니 문득 저 녀석들이 보고 싶더군. 그때 동물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

 

  윤은 연못 안의 소금쟁이가 가볍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무연히 내려다본다.

 

  저 지구 반대편의 어느 마을에서는 노래를 많이 아는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대. 그 부족에게 노래는 모든 화를 잠재우고 편안한 잠을 주는 자장가지. 가끔 옛일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도 있지. 그때마다 자장자장, 그 녀석을 달래고 잠재워. 그러면 오히려 그 녀석이 나를 잠재워. 가끔 침팬지들한테 자장가를 불러줄 때면 곤하게 자는 동생이 옆에 있는 것 같아.

 

  음정 박자 하나도 맞지 않는 윤의 노래 어디에서 영혼을 위로하는 마술적인 힘이 나오는지 늘 궁금했었다. 여자가 어제 쓰러졌을 때 들려왔던 노랫소리가 그제야 떠오른다. 어느새 마른 바람이 걷히고 여자는 뽀얗게 안개가 덮인 벌판에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었다. 그것은 동물원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냄새와 비슷했다. 잠 속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깃털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 볼을 쓰다듬었다. 허공을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대신 어떤 소리가 잠결의 희미한 감각에 잡혔다. 저 먼 지구 끝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아득하고 먼 소리, 편안하게 눈 뜨게 하고 악몽을 잊게 만드는 노래였다. 그것은 자장가처럼 높낮이가 단조롭고 조용했다. 노래는 오랫동안 귓바퀴를 맴돌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쩌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귓가에 희미한 노랫소리만 이명처럼 맴돌았다.

 

  긴 이야기를 끝내자 오랜 시간을 달려온 것처럼 윤의 얼굴은 붉어져 있다.

 

  간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지. 누군가의 고통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지. 내 마음은 작기만 한데 그보다 더 큰 마음이 들어오면 흘러넘쳐. 그게 눈물이라지? 하지만 이해한다는 말도 못해. 그런 말이 사탕 한 알보다 위로가 안 된다는 걸 알거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느티나무는 두 사람이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연못에서는 커다란 연잎이 빗물을 받는다. 연잎에 더 고일 수 없을 정도로 빗물이 가득 차면 기우뚱 한쪽으로 기울여 빗물을 쏟아버렸다. 미련 없이. 흔들리던 잎은 빗물을 비우면서 다시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지 않는다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여자의 몸이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가볍게 떨어진다.

 

  윤의 이마가 고요한 달의 물처럼 깊고 투명하다. 웃지 않을 때는 성마른 짐승처럼 화나 보이는데, 입 주변에 서서히 균열을 내며 짓는 어색한 미소는 공양 한 그릇 얻은 기분이 들게 할 만큼 넉넉하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10시가 넘어서자 놀이동산에 인파가 몰려든다. 하늘에는 무지개 색 애드벌룬이 떠 있고 공작처럼 화려한 장식을 한 미녀들의 카퍼레이드 뒤로 코끼리떼가 지나간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라간다. 동물원 식구들이 공연장으로 속속 모여든다. 물개 쇼가 끝났는지 맞은편 수중 공연장에서 아이들이 물에 젖은 옷을 털며 나온다. 곧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최종 리허설 때 색동 한복을 입은 순이는 어느 때보다 의젓했다. 공연이 끝나자 순이는 입을 쭈욱 내밀고 여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공연 십여 분 전 여자의 얼굴이 굳어진다.

 

  순이 못 봤어요?

 

  다른 사육사들 얼굴이 난색이 된다. 한복으로 갈아입을 때만 해도 순이는 얌전하게 다른 침팬지들과 함께 있었다.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온다. 윤이 눈짓을 하자 여자는 무대를 조련사에게 내준 다음 무대 뒤로 빠져나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대 근처에 없다면 순이가 갈 만한 곳은 한 곳뿐이다. 음악 소리와 조련사의 구령 소리, 아이들의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인공 포육실로 향한다. 여자는 포육실 구석에서 도리도리 고개를 흔드는 순이를 찾아낸다. 태엽 감은 인형처럼 멈추지 못하는 순이는 이빨을 마주친다. 밖에서는 이미 다른 침팬지들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아는지 음악이 바뀔 때마다 고개를 든다.

 

  드디어 순이 차례다. 귀에 익은 음악에 순이의 표정이 잠시 바뀌는 듯하다. 여자는 순이를 안고 조심스럽게 무대로 통하는 문을 연다. 쏟아지는 빛 때문인지 순이 얼굴이 이를 가로로 길게 드러내놓고 웃는 표정이 된다. 극도의 공포와 긴장의 표현이다. 여자는 아악, 소리를 지른다. 순이는 여자의 소리에 놀라 더 큰 비명을 지르고 도망간다. 여자는 손등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윤에게 신호를 보낸다. 윤은 무대 인사를 대신하고 마지막으로 포육실을 관람하게 된다는 안내를 한다.

 

  순이의 공연은 실패다. 어젯밤 침팬지 몇 마리가 다른 동물원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새어나왔다. 조용하고 민첩하게 진행되었지만 소리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순이가 두려워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간밤의 악몽인지, 친구들의 비명이었는지.

 

  여자는 불안에 떨고 있는 순이를 안고 방으로 간다. 방은 두 평 남짓 둥근 원통 모양에 아크릴 재질로 되어 있다. 가끔 순이를 데려와 재우는 곳이기도 하다. 투명한 방을 통해 관람객들이 여자와 순이를 보게 될 것이다. 요 위에 순이를 눕히고 우유를 먹인다. 여자에게 혼날 것이 두려운지 순이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여자는 순이 옆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겨 아랫도리를 덮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지나가기 시작한다. 관람객들은 복도를 지나다가 방 안의 순이와 여자에게로 눈을 돌린다. 투명한 벽에 코를 박고 신기한 듯 들여다본다. 그럴수록 여자는 순이를 꼭 안는다. 연약한 몸은 여자가 안고서도 팔이 남을 정도로 가냘프다. 순이의 한쪽 팔이 여자의 목을 감는다. 이불을 가만히 끌어다 덮으며 토닥거린다.

 

  자장자장 내 아기, 넌 어데서 왔니? 달도 별도 잠든 새 아무도 모르게 쌔근쌔근 잘 자네, 산 너머 도깨비도 너를 못 깨우리, 뜯어진 심장은 정성스레 기워줄게, 한 땀 한 땀, 구겨진 머리칼은 눈물로 다려줄게, 한 올 한 올, 모두 잊으렴, 모두 잊으렴, 둥글게 돌돌돌 말아 꼭 안고 있을 테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겨줄 테니, 무거운 두 눈은 솔바람에 널어줄게, 녹지 않게, 부러진 날개는 예쁘게 달아줄게, 울지 않게, 토닥토닥 음 자장자장 음…….

 

  순이의 앙상한 갈비뼈가 부딪쳐 와 가슴이 먹먹해온다. 우리 밖의 아이들은 서로 쉿, 하며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세로로 갖다 댄다.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여자에게 안겨 있는 순이를 본다. 순이의 털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여자는 한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모성의 느낌을 갖는다. 이제 내가 네 엄마가 되어줄게. 내가 널 지켜줄게. 처음 순이를 거부한 건 어쩌면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깊은 터널의 끝에 당도한 느낌이다. 눈이 뜨거워진다.

 

  아프리카 빌리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둠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또 다른 세상이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순응 뒤에 오는 명순응은 빛이 들어온 필름처럼 세상을 하얗게 탈색시켰다. 어둠이 네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거야. 언젠가 순이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혼은 상처 입을 때마다 나이테처럼 유리막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막이 아니라 기억일 뿐.

 

  어느새 사방이 조용해진다. 아이들의 소리도,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도, 바람 소리도 멈춘다. 여자의 자장가 소리만 고요히 퍼진다. 여자는 아프리카 열대의 세렝게티를 순이와 함께 뛰어다니는 꿈을 꾼다. 모래바람이 일지만 차츰 그 바람 속에서도 길이 보인다.<끝>

 

 

[당선소감]

끝없는 무능 확인의 과정… 내겐 또 어떤 길이 열릴까 ?

 

  지금 아버지의 노래가 간절히 듣고 싶다. 마루 끝에 서서 석류나무가 있는 마당을 보며 부르는 아버지의 노랫소리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무엇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감동이자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살아오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낸 감동은 내게 믿을 수 없는 큰 힘이 되었다. 가끔은 균형을 잃어 비틀거릴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를 세운 것이 아버지의 노래와 함께 내게로 온 감동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해준 나의 방식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어쩌면 인간 개개인이 아닌 존재에 대한 커다란 의구심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믿음일지라도 믿는다는 것만큼 든든한 게 있을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무엇이란 없다. 실상은 그 끝에 아무것도 없으리란 것도 안다. 결국 우리가 꿈꾸는 허상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굳이 희망이 아니어도 좋다. 생에 마르지 않는 우물 하나 가지는 것, 매력 있다. 하지만 금세 흘러가버리는 말을 가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계를 느낀다.

 

  끊임없이 무능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솜씨 없는 어미에게서 태어난 것들을 감싸 안으며 추하고 못난 인생까지 감싸 안는 법을 배운다. 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행히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선다. 운명이 럭비공처럼 튀어 이곳에 이르렀고 또 어떤 길을 열어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 길이 나를 가장 나답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늘 힘이 되어주시는 박상우 선생님, 그리고 소행성 문우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목요독서 친구들과 나의 허물 기꺼이 덮어주는 가족, 세상을 향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세상에 대해 서툰 입을 하나 가진 느낌이다. 실수를 저지르는 입이 아니라 위로하는 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967년 대구 출생

대구 가톨릭대 철학과 졸업

2009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심사평]

 

 

 

소외와 상처 담담히 그려내… 작가의 따뜻한 시선 느껴져

 

  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김민정의 ‘당신의 시선’, 김시율의 ‘돌아와 흑염소’, 조형래의 ‘파편’, 김은아의 ‘당신의 자장가’ 네 편이었다.

 

  ‘당신의 시선’은 형식에서 신선했으나 시점의 변화가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지 못해 작위적인 느낌을 주었고, 서사구조도 밀도 있게 짜여지지 못해 인상적인 이야기로 완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돌아와 흑염소’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러 삽화들이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파편’은 무난한 문장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진술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인물의 캐릭터를 참신하게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전체적인 구성이 응집력을 확보하지 못해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최종적으로 ‘당신의 자장가’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사육사인 화자가 자신이 돌보는 침팬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소외와 상처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당신의 자장가’는 무엇보다 그늘진 곳을 웅숭깊게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였다. 약육강식의 사육장 풍경과 더불어 ‘윤’이라는 남자와의 관계를 형상화하는 솜씨도 안정적이었다. 오랫동안 닦아온 솜씨라고 보았다.

 

  형식과 내용에서 두루 신뢰할 수 있는 신인 작가를 얻었다고 본다. 작가의 계속적인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