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교, 후 / 송 희
동백꽃 한 송이를 덥썩,
보쌈했습니다
하얀 비닐봉지 속에서
잎이 더 파르르 하더니
잠깐 숨이 멎었습니다
시집갈 때 철없이 주워 입은 내 옷
붉은 저고리에 초록 치마만 같아서
손부터 가고 말았습니다
헌데 딱 하루 만에 툭,
제 모가지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집 간 날 한 번 입은 내 옷처럼
그날 이후론 잃어버린 내 이름처럼
그 짧은, 목을 혀로 쓸었습니다
아아, 달콤하고 새콤하였습니다
제 모습을 싹뚝 지우는 것이
그렇게나 통쾌한 일인지
얼굴 없는 동백,
치마만 질끈 동여매고도
밥주걱 하나만 있으면
힘이 솟는 어머니처럼
의기양양입니다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쨍한 사랑노래 / 황동규 (0) | 2010.01.27 |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 2010.01.27 |
계란 프라이 / 마경덕 (0) | 2010.01.24 |
나비 시인 / 문정희 (0) | 2010.01.16 |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0) | 2010.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