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어떤 순교, 후 / 송 희

시인 최주식 2010. 1. 24. 21:05

 어떤 순교, 후 / 송 희

 

동백꽃 한 송이를 덥썩,

보쌈했습니다

하얀 비닐봉지 속에서

잎이 더 파르르 하더니

잠깐 숨이 멎었습니다

시집갈 때 철없이 주워 입은 내 옷

붉은 저고리에 초록 치마만 같아서

손부터 가고 말았습니다

헌데 딱 하루 만에 툭,

제 모가지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집 간 날 한 번 입은 내 옷처럼

그날 이후론 잃어버린 내 이름처럼

그 짧은, 목을 혀로 쓸었습니다

아아, 달콤하고 새콤하였습니다

제 모습을 싹뚝 지우는 것이

그렇게나 통쾌한 일인지

얼굴 없는 동백,

치마만 질끈 동여매고도

밥주걱 하나만 있으면

힘이 솟는 어머니처럼

의기양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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