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시인 최주식 2010. 1. 16. 21:21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숨죽여 홀로 운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마지막처럼 고백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두려워하며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소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계간 『실천문학』 200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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