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마리아 / 김신용
판잣집의, 그 삐걱이는 계단 같은 흉곽을 가진
역 앞, 빈민굴의 그 좁고 어두운 골목 같은 눈빛을 가진
그 골목길을 서성이며, 잠깐 쉬었다 가실래요?
지나가는 남자들의 옷자락을 붙드는, 그 눈웃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나던, 헐값의 숙박비만 지불하면
누구나 쉽게 묵어갈 수 있었던, 퇴색한 벽지와 때묻은 이불
흐린 전등불빛이 유일한 장식품인, 뒷골목의 여인숙처럼
길을 걷다가 쉬고 싶을 때, 그렇게도 쉽게 눈에 띄던
하룻밤 자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 초라한 간판처럼 너무도 쉽게 잊혀지던
다시 찾아들면, 신음 같은 그 흉곽의 삐걱임으로 더 포근하던
가슴, 구멍 숭숭 뚫린 그 흉벽의 空洞으로, 가족들의 얼굴이 비명처럼 드나들던
그 몸을 팔아, 진폐의 가난을 치유하려 했던
가난을, 가난으로 치유하려 했던
가난이 퇴화하면 무엇이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가난을 아기 예수처럼 안고 있었던,
가난을 아기 예수처럼 안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몸이
허물어져가는 마구간처럼 될 수밖에 없었던, 그 거꾸로 선 生
화려한 여관과 러브모텔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실종신고도 없이,
실종되어 버린
결코 아기 예수를 낳아본 적 없으므로, 흰색이 아닌
아프리카 흑인의 마리아는 물론 검은 마리아이겠지만
제3세계, 전쟁과 기아로 병든 아프리카의 검은색도 아닌
가난이 세습되는 空의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이 땅의 흙색이면서도, '검은 마리아'라고 불리었던
눈물겹게도, 푸줏간에 놓인 고기 한 점도 못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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