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인연 / 김해자

시인 최주식 2010. 1. 27. 23:16

인연 / 김해자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과 주황빛이 만나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온 이 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을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온 이래

목욕한 내 딸의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젖은 만큼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럽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 쓰다 놓아버릴 내 몸뚱이

 

              

              김해자 시인


1961 전남 신안출생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전태일문학상수상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0) 2010.01.27
왕버들 상회 / 이영옥   (0) 2010.01.27
쑥대밭 / 김신영   (0) 2010.01.27
노래 / 엄원태   (0) 2010.01.27
귀명창 / 장석주   (0) 2010.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