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김해자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과 주황빛이 만나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온 이 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을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온 이래
목욕한 내 딸의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젖은 만큼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럽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 쓰다 놓아버릴 내 몸뚱이
김해자 시인
1961 전남 신안출생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전태일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