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노래 / 엄원태

시인 최주식 2010. 1. 27. 23:15
노래 / 엄원태


가설식당 그늘 늙은 개가 하는 일은
온종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일
턱까지 땅에 대고 엎드려 가만히 듣고
심심한 듯 벌렁 드러누워 멀뚱멀뚱 듣는다

곡조의 애잔함 부스스 빠진 털에 다 배었다
희끗한 촉모 몇 올까지 마냥 젖었다
진작 목줄에서 놓여났지만, 어슬렁거릴 힘마저 없다
눈곱 낀 눈자위 그렁그렁, 가을 저수지 같다
 
별다른 할 일 없는 주인아저씨의 일이란
줄기차게 키세트테이프를 들어대는 일
한결같은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 리바이벌
 
정작 노래를 틀어대는 주인 아저씨보다
곡조의 처연함 제 몸으로 다 받아들인 늙은 개가
저 여가수의 노래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겠다

뼛속까지 사무친다는 게 저런 것이다
저 개는 다음 어느 생에선가 필시 가수로 거듭날 게다
노래가 한 생애를 수술 바늘처럼 꿰뚫었다

 

 제7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엄원태 시인


1955년 대구 출생
1990년「문학과사회」에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등을 발표하며 등단 .
1991년 시집「침엽수림에서」민음사
1995년「소읍에 대한 보고」문학과지성사
1991년 제1회 대구시협상을 수상
2007년「물방울 무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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