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詩

200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작

시인 최주식 2010. 1. 29. 23:20

200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작

 

보이저氏 / 김현욱

 
1.


보이저* 氏의 돌잔치는 지구 밖에서 열렸다
보름달 위에 차린 돌상을 받아
홀로 돌잡이를 하였는데
웬일인지 보이저氏는 아무 것도 집지 않았다
돌상 너머 파랗게 빛나던 구슬은 이미 멀리 있다는 걸
보이저氏는 운명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품속으로 무작정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2.


보이저氏는 이제 서른이다
서른 해 동안 한 일이라곤 고작
두리번두리번 걸어간 것뿐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보이저氏를 외우며 지나갔다 
사춘기와 입시의 블랙홀을 간신히 건넜으나
무한진공의 우주 어디에도
제 몸 하나 붙박아 둘 중력의 직장은 보이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소행성과 부딪칠 뻔 했을 때
보이저氏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주에 취직했다는 걸
죽을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걸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이상기후의 지구에서도
용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대범하게 아이까지 낳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보이저氏는 애오라지 걸어가기만 했다
내 직장은 우주다 내 일은 나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보이저氏는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지구에서 유행하던 주문을 되뇌이며
무소의 뿔처럼 성큼성큼 나아가기만 했다

아직도 보이저氏는
우주 어딘가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너무 멀리 가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보이저氏를 놀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걸
보이저氏 조차 모른 채 우주 밖의 지구를 향해
시원(始原)의 자궁을 향해
뚜벅 뚜벅

 

* NASA에서 1977년 발사한 무인우주탐사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