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00

벼룩시장에 간을 내놓다 / 최정란  

 

 

 팝니다. 권리금 없습니다. 시설비 조금 인정하시면 바로 드립니다. 보수유지비가 만만찮을 것이라구요. 철거비가 더 들거라구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분해효소가 없어 소주 한 잔 이상 안 받고 이래저래 속 끓이는 날 많았으니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도 몇 군데 손보면 바로 일을 시작해도 될 만큼 쓸만할 겁니다. 자재는 형편 닿는한 좋은 것을 썼거든요. 내놓을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평생 쓰겠다 작정하고 큰 맘 먹고 준비했었지요. 처음 시작할 때야 누군들 희망 아니었겠습니까. 급매물건이라고 더 깎으시면 벼룩의 간을 빼먹겠다는 겁니다. 대신 덤으로 쓸개까지 얹어 드리지요. 체질이 맞는지, 거부반응은 없을지, 검사 일정부터 맞추어볼까요. 팔려고 내놓은 간을 쓸고 닦는다. 바위 위에 꺼내 말렸다가 다시 들여놓기를 몇 번인가 반복한 후에.

 

 

  

  <시와 인식> 2008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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