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죽부인 / 박순호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04

죽부인 / 박순호

 

홑이불 속에 죽부인이 누워있다

머리끝까지 폭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다

너무 가볍다 못해 텅 비어있는 몸통

가끔 그녀는 여름밤 평상에 누워

끈적거리는 열대야에 잠들지 못하고 별자리를 살피곤 한다

거문고자리 쪽을 향해 돌아눕는가 싶더니 작은 바람에도 소스라치며 뒤돌아보던

감자 빛을  닮은 그녀의 살결

오늘 밤 내게 수청을 들겠느냐 묻고 싶은 야릇한 밤이다

현의 떨림인지 거문고자리에서 차오르는 빛을 따라가는 길

발목을 심하게 삐어 며칠째 한의원을 찾아가도

툇마루에 걸린 시래기처럼 푸른 멍이 가시지 않는 애증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죽부인 허리께에 가만히 발을 올려놓는다

아직도 너는 짐일 뿐이라며

푸른 댓잎 한 장 떨어지는 존재라며

그녀의 몸속에 머물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바람의 말

 

시집<무전을 받다> 2008. 종려나무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람쥐의 겨울 창고 / 김동호   (0) 2010.01.31
유리창 / 장인수  (0) 2010.01.31
과적 / 김왕노  (0) 2010.01.31
도끼 / 안도현   (0) 2010.01.31
노끈 / 이성목  (0) 201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