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용문고시텔 3 외 1편 / 박순원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52

용문고시텔 3 외 1편 / 박순원

 

이 오래된 건물은 귀신 천지다
옆방 문이 세게 닫히면
내 방문이 찰칵 열린다

지하에는 노래방 귀신이
새벽 두 시까지 쿵짝거린다

그래도 인간도 귀신도 안중에도 없는

폭주족 귀신보다는 낫다
옥상에는 고양이 귀신 옆방에는
코고는 귀신이 산다
나는 술 먹는 귀신이다 열쇠 
잃어버리는 귀신이다 앞방에 이혼한
에로비디오 귀신이 유일한 술친구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풍을 치다가
곧장 노래방 귀신이 된다
고개가 외로 꺾이고 다리도 저는 귀신은
뭐해 먹고 사는 귀신인지 모르겠다
구두도 열심히 닦고 이를 닦는 것도
몇 번 보았는데 내가 짐짓
안녕하세요 똑 떨어지는 
인간의 말로 인사를 하면 흘깃

귀신의 눈길로 받아준다

제대로 된 귀신이다
이 건물은 많이 낡아서
가벼운 귀신들이 기대고 있기 좋다


   <서정시학> 2006년 여름호

짧은 말 / 박순원

요새는 밥솥도 말을 한다 증기 배출을 시작합니다
백미 고압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쿠쿠
모기도 할 말이 있어 내 주위를 맴돌고
강아지는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가 만다
버스를 기다리다 나무를 쳐다보면 나무는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는 듯이 딴 데를 본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을 밟으면 찍하고
물을 뱉을 때가 있다
나는 주로 핸드폰에 대고 말을 한다
이제는 멀리 살고 전화번호도 바뀐 옛 애인도 지금
누구하고 밥풀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순원  시인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주먹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