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편의점 외 1편 / 이가영
웃음충전을 하면 삼백육십오일
웃게 된다는 새 포스터가
장미 벽돌로 세운 편의점 유리창에
'웃음충전’ 이 나붙었다
노란 자전거를 타고 온 민들레 소녀가
새콤한 웃음도 있어요. 라고 묻자
편의점 주인 남자가 푸하하하 웃으며
물론 있죠. 라고 대답 한다
백송이 아이스크림이
나리꽃처럼 까르르르 웃는다
새콤하게 웃는다
쪽쪽 빨아먹고 쭉쭉 핥아먹는 새콤한 맛에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갖 식물들이 휴대폰 충전을 하러 왔다가
새콤한 웃음은 희망을 주는 거라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벌나비 한 입씩 희망을 물고
문턱이 닳아빠지도록 들락거린다
웃을 수 있는 건 행복한 거야
혼자 상처를 안고 살던 함박꽃도
웃음충전을 하고부터
재빨리 함박웃음을 찾았다고 한다
당신은 모르죠,
우리가 함께 웃으면
해바라기 궁전도 세울 수 있고
수레국화 바다도 만들 수 있어요
그 말의 화력이 나에게 옮겨 붙어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참고 있던
웃음꽃이 깔깔깔 터져버렸다는 것,
낮달 / 이가영
생강나무 그늘을 보면 매콤한 냄새가 난다 아롱거리는 냄새 맡고 있으면 어느새 생강꽃은 은근한 햇볕에 샛노란 카레 빛깔로 북적북적 끓어오른다.
꽃샘추위 물러가고 배곯은 머리 흰 바람 자박자박 무료급식소 용케 알고 찾아온다 두류공원 시계탑, 그 앞에 나무 사이사이 신문지 깔고 앉은 바람이 생각보다 많다.
서로 모르는 비둘기도 구름도 한 자리에 모이는 날, 입맛 잃은 백양나무 두 그루처럼 나도 북적거리는 그 자리에 힐끔거리며 서 있었다, 세상의 길이 반들반들하다.
부축해 온 바람이 말끔히 비운 접시를 땅에 떨어뜨릴 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봄하늘에 오백년 된 쪽배로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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